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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신드롬의 산실 한국고전번역원에 가보니|

조선왕조 신드롬의 산실 한국고전번역원에 가보니

일요신문 배해경기자 2015.07.15


일요신문] 조선왕조를 배경으로 한 콘텐츠가 최근 몇 년 사이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와 <명량>(2014),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이끈 드라마 <정도전>(2014)까지 조선왕조가 들려주는 무궁무진한 소재에 대중들은 열광했다. 최근 웹툰 <조선왕조실톡>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조선왕조 콘텐츠는 젊은 층까지 흡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성공적인 콘텐츠들의 반석이 된 것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조선시대 기록물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조선시대 기록물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돕는 고전번역가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숨어 있다.
 

학국고전번역원은 조선왕조실록의 재번역 작업을 하면서 정확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원 안 사진은 정조의 이름이 이산에서 이성으로 변해왔음을 밝히는 긴 주석.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정조의 이름은 ‘이산’이었을까요? ‘이성’이었을까요? 정조 이름에 대한 논란이 많았는데 <조선왕조실록> 재번역을 하면서 한 번역위원이 정조 이름과 관련한 논문과 자료를 샅샅이 찾아냈어요. 결국 이를 종합해 정조 이름과 관련한 주석을 달았는데 이 작업만 꼬박 이틀이 걸렸어요.” 

한국고전번역원 정영미 조선왕조실록번역팀장은 번역을 위해 실록의 5~10배에 해당하는 자료를 찾아야 하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반 독자들에게 고충으로 비칠 이 작업은 고전번역가들에게는 곧 ‘자긍심’이다. 오는 2026년 완역을 목표로 지난 2011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실록 재번역 사업에서는 ‘(정조) 대왕의 휘(왕의 이름)’를 ‘성’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산’이라는 표기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산’에서 ‘이성’으로 변해왔음을 주석을 통해 밝히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조선왕조 콘텐츠의 산실이 된 한국고전번역원은 민간기관으로 운영해오다 지난 2007년 교육부 산하 학술연구기관으로 승인받았다. 그동안 고전번역원은 우리나라 고전번역의 70% 이상을 소화해 냈다. 여기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중요한 국가기록도 포함돼 있다. 

실록은 1993년 이미 한 차례 완역된 바 있다. 하지만 1차 번역의 오류와 한문을 직역한 문장은 늘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이 때문에 고전번역원이 재번역을 시작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도 ‘정확한 번역’이다.  
 

실록 번역을 위해서는 <승정원일기> 등의 번역 경험이 전제돼 있어야 한다.


실록을 정확하게 번역하기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실록은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축약해서 간단하게 썼기에 실록만 가지고서는 정확한 전후사정을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실록 번역위원들은 왕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 왕을 보좌하면서 날마다 기록한 <승정원일기>나 왕의 동정과 국정을 일기체로 쓴 <일성록> 같은 원문 자료들을 끼고 살아야 한다. 정영미 팀장은 “실록 번역은 <승정원일기>나 <일성록> 번역 경험이 있고, 사료를 다뤄봐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한문뿐 아니라 당시의 문화 제도 법전 등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며 “재번역에서는 실록 전체의 맥락을 볼 수 있도록 주석이 강화됐다. 1차 번역에 비해 주석이 6배 정도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1차 번역에 비해 번역 환경은 많이 개선된 편이다. 원문 자료가 데이터베이스화 되면서 원하는 정보를 비교적 쉽게 찾아낼 수 있게 됐다. 체계적으로 어휘의 용례를 정리하면서 번역의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 하지만 실록 재번역은 6% 정도 진행된 상태로, 아직 갈 길이 멀다. 실록 원문을 한 장 번역하는데 하루 이상이 걸리는 것은 기본이다. 

이규옥 조선왕조실록번역팀 수석연구위원은 “국가에서 많이 투자한다고 해도 당장 성과를 낼 수 없는 것이 고전 번역 사업이다. 고전 번역은 고도화된 전문인력이 양성되지 않으면 당장 성과가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고전번역원의 번역위원 1명이 양성되는 데는 적어도 5~10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번역교육원에서 선발하는 인원이 한 해 50~60명으로 ‘사서삼경’ 정도를 기본으로 익힌 사람들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교육원에 들어와도 5~7년의 연수기간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연수를 끝냈다고 모두 번역위원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으로 실록 번역에 참여할 수 있는 번역위원은 1년에 2~3명 나온다. 그만큼 고전번역 전문인력 양성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과정이다.  

이기찬 역사문헌번역실 실장은 “고전번역 인재양성이 굉장히 힘든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고전번역교육원은 여전히 비학위과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체적으로 고전번역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해 석·박사과정으로 개편하기 위해 교육부와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설득 중”이라고 말했다.  

정영미 팀장은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불과 100년 전 조상들과의 전통이 단절된 경우다. 외국의 경우 학부를 마치면 조상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국가가 조상들의 문헌을 번역하는 기관을 두는 특수한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이고, 한편으로는 불행한 일이다”라며 “고전번역가라는 직업이 어려운 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공부하고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는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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