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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반대할 일인가?|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반대할 일인가?

공무원신문 김동민 한양대신문방송학과겸임교수 2015.07.27


교육부가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도록 방침을 정하자 한글단체와 교육단체들이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한글단체들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우리말을 두고 왜 한자를 쓰도록 강제하느냐는 것이고, 전교조와 교육감들은 아이들의 학습 부담이 증가하고 사교육비도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를 든다.

한자 교육이 한글 교육을 저해할 것이고, 한글만으로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한글단체들의 주장은 사실과 배치된다. 한자를 배우지 않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에게 문과와 이과 통합이나 ‘병기’의 의미를 물으면 정확하게 답을 할 수 있을까? 문과(文科)와 이과(理科)가 무엇이며 왜 통합해야 하는지, 병기가 倂記인지 兵器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맥락을 짚어 대충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어휘에 대한 정확한 의미는 파악하기 어렵다. 교육이 시장에서 흥정하는 데 필요한 의사소통과 같을 수는 없다.


  
▲ 초등학교 한자교육 교재.


이과(理科)라는 것은 보통 이공계를 지칭하는 구분을 의미한다. 자연과학과 공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선택한다. 그러나 자연과학은 공학보다는 문과에 더 가깝다. 서양에서 고대의 자연철학이 근대에 와서 자연과학으로 발전했는데 그것이 기술과 결합한 것이 공학이다. 

근대역학을 정립한 뉴턴의 역사적인 책 <프린키피아>의 원래 제목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다. 원래 라틴어로 쓴 제목을 줄여서 ‘프린키피아(Principia)’라고 하는 것이다. 뉴턴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 “나는 이 책을 수학 원리의 철학이라고 부르겠다.” 라고 했다. 자연과학은 곧 자연철학으로서 철학의 소관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로 구분하여 공부를 하게 하는 것은 기형적인 발상이다. 소위 문사철(文史哲)을 지칭하는 인문(人文)과 인문(人紋)이 결여된 상태에서 공학과 기술을 배우면 창의성이 발휘되지 않는다.

과학(科學)이라는 것도 동양으로 비유하자면 학문 전반을 지칭하는 것으로, 19세기 유럽의 학문(science)은 다양한 갈래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일본의 유학생들이 서양의 학문은 동양과 다르게 분과(分科)로 나누어져 있다고 하여 ‘분과(科) 학문의 학(學)’이란 의미의 과학으로 번역하여 사용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 science는 ‘지식체계’란 의미의 라틴어 스키엔티아(sciéntǐa)에서 왔다. 그것을 과학으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으니 어원을 모르면 그 의미를 좁고 제한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전문화된 분과학문들은 학문들 사이의 소통이 단절된 이후 최근에는 학제간 연구니 통섭이니 융합이니 하는 요구들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科)는 분류한 조목, 웅덩이 등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모든 과학(sciences)이 하나다. 편의상 나눠있지만 넓게 소통하고 융합해야 한다.

대학의 전공학과는 웅덩이와 같은 것으로, 물이 흘러 웅덩이가 차면 물이 계속 흐르게 하여 다른 웅덩이들과 소통을 해야지 고립되어 고여 있으면 썩는다. 문과를 선택하면 이과에 대해 무지하고, 이과를 선택하면 문과에 대해 무지하게 되는 교육현실은 지극히 비정상이다. 서양학문만 해서도 안 되고, 동양학문을 해야 할 때 한문을 읽고 이해해야 하는 것은 필수다. 이 점에서 교육부의 문 · 이과 통합교육과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 방침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학문이란 것도 그렇다. 한자교육을 받지 않은 대학원생들이 학문의 의미를 알까? 태반이 모를 것이다. 공자가 노(魯)나라 애왕(哀王)에게 정치에 대해 길게 설명한 강론에서 정치를 잘하려면 넓게 배우고(博學) 깊이 있게 질문(審問)하라고 했는데, 이것이 학문이다. 하나의 전문분야만을 들이파는 것은 학문의 본령이 아니다.

초등학교에서 기본 한자를 익혀놓지 않으면 중고등학교에서 한문 과목에 몰입할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한문 과목을 선택하지 않으며, 선택해서 듣더라도 입시에 반영되지 않으니 성적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결국 한자맹을 양산하게 된다. 중학교에서 배우면 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 초등학교 한자교육 교재.


그래서 초등학교의 현명한 교장들은 교재를 선정해서 아이들에게 한자 교육을 시킨다. 물론 강제는 아니어서 자습시간에 하도록 하든지 숙제를 내준다. 그러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은 한자 공부를 한다. 한자를 통해 어휘력이 향상된 학생들은 국어 성적이 올라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한자 익히기를 더욱 즐긴다. 그 효과는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발휘된다.

이렇게 한 개인의 한자 능력은 초등학교에서 결정된다. 그러니 한자 교육을 교장과 개인의 선택에 맡겨서는 안 된다. 한글(국어) 교육에 지장을 준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다. 아이들과 학부모의 부담 증가 운운도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말자는 것이다. 할 건 해야 한다.

동양은 한자문화권이다. 실제 사용하는 우리말 어휘의 57%가 한자다. 중국이 간자체를 많이 쓰지만 한자를 알면 훨씬 쉽다. 한자를 모르고는 일본어를 할 수 없으며, 심지어 베트남어도 한자 발음과 비슷한 것들이 많다.

서양에서는 라틴어가 그런 기능을 한다. 영어를 비롯한 유럽의 언어들은 대부분 라틴어를 기원으로 하기 때문에 라틴어를 익히면 유럽의 여러 나라 말을 쉽게 배운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라틴어 교육을 장려하고, 학생들도 열심히 배운다. 미국에서도 라틴어를 익히면 영어 어휘력이 향상되어 SAT(대입시험)에서 도움이 되기 때문에 라틴어 교육이 활발하다.

안산의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단계별로 교재가 있어서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한자를 익히도록 권장한다. 교재를 보면 유익한 사회생활의 내용으로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한자를 배우게 되어 있다. 물론 교재만 선택해줄 뿐 강제는 아니어서 안 해도 그만이다.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한자기능시험을 학교로 유치하기도 하는데 의무는 아니다. 학부모나 학생들의 불만은 없고,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배우는 학생들과 학부모는 만족해한다. 이것을 교장의 재량에 맡기지 않고 제도화하면 좋을 것이다. 한글단체야 그러려니 하더라도 참교육을 말하는 전교조와 교육감들의 발상의 전환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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