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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OK, 한자는 불가(不可)?|

영어는 OK, 한자는 불가(不可)?


충청투데이 홍준기 충북도중앙도서관장  2015.06.11


    

'한자 병기, 글 읽기를 방해한다.' 어느 일간지의 기고문 제목이다.

스스로가 유식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필자는 금방 '병기'라는 말뜻을 알아차렸다. 초등학교 때 한글, 한자 병기를 통해 한자를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기본 한자조차 약한 아이들이 과연 이 '병기'라는 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것은 '병기(倂記)'라는 쉽지 않은 한자어에, 한자를 '병기'하지 않고 한글로만 표기했기 때문이다.

기고자는 정부의 초등학교 한자 병기 방침에 대해 "중학교부터 한문수업에서 한자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한자 병기는 불필요하거니와 읽기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또 "증권시장의 '선물(先物)시장'이 '선물(膳物)시장'이 아니라는 것을 문장 흐름을 통해서 안다"고도 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기고자의 의견이 타당한지는 둘째로 치고, 간단히 말하면 이것은 '배운 자의 횡포'란 생각이다. '한자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논리를 인정하면서도 '중학교부터'라고 못을 박는 이유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한자 교육 때문에 초등학교 아이들이 과외를 받게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이는 구더기 무서워하는 일이요,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일이다. '문장의 흐름을 통해서 안다'고 했지만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이미 한자에 익숙해 있는 '가진 자'임을 망각한 논리다.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1970년 이후 수십 년 된 한글전용 정책의 원칙과 기준을 뒤엎는 정책변경이라며 비판한다. 그러나 필요하면 헌법도 바뀐다. 50년 전만 해도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던' 간통도 위헌 판결이 났다.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어느 교수는 400자 정도의 기초 한자라면 중·고교에서 한두 주 사이에 배울 수 있는 분량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과정보다 결과가 중시되는 세상이지만, 이건 '교육'이 아니다.

제시카, 티파니, 지드래곤, 니콜….

무슨 말인지 '구세대'들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신세대들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가수 이름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 차린다. 유치원부터 수십만 원씩 들여 영어교육 시키는 것은 괜찮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기초한자를 병기하는 것은 안 된다면, 이것도 또 다른 사대(事大)가 아닌지 걱정된다. 가로로 하나를 그으면 일(一)이고 둘을 그으면 이(二)라는 아주 평범한 이치를 깨닫게 함으로써, 한자에 친밀감을 갖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한자 병기 교육의 기본 취지이다. 유치원에서 영어 알파벳 노래를 가르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초등학교부터 거북이(龜)나 울릉도의 울(鬱)자 같은 글자를 가르치자는 것은 아니다. 쓰기(筆)보다는 읽고 이해하는 게 주목적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이고, 한자 어휘의 90% 이상이 동음이의어라고 한다. 충북교육의 금자탑인 '소년체전 7연패'가 연패(連覇)인지 연패(連敗)인지는 정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초등 한자교육 때문에 이것저것 할 게 많은 아이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걱정은 지레짐작이다.

먹는 것처럼 공부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제한된 시간을 합리적으로 나눠주고 먹을 것을 골고루 먹도록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와 교사와 부모가 할 일이다.

초등 한자교육을 놓고 갑론을박하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고 싶다. 한자를 전혀 접한 적이 없는 초등학교 아이에게 '남남북녀'를 설명한다 치자.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그 '교육방법'을 정말 보고 싶다.

영어는 OK, 한자는 불가(不可)?

바로 이것이 편식(偏食)교육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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