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연구자료
관련기사

관련기사|

교수도 몰랐던 말, '기하학' 뜻을 아시나요?|


      

교수도 몰랐던 말, '기하학' 뜻을 아시나요?



기하학이라는 게 있다. 배우는 내용도 어렵지만 기하학이라는 말만 들으면 무엇을 배우는 학문인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기하학의 한자어 표기인 幾何學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어찌기, 어찌하, 배울학이니 ‘어찌어찌배움’이나 ‘어찌어찌학’라는 뜻이 될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선물이라는 것도 있다. 생일 때 주는 선물(膳物)이 아니라, 한국거래소에 상장돼 투자대상이 되는 선물(先物) 말이다. 이 선물이라는 말을 듣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 한명도 없을 것이다(물론 선물이라는 용어를 미리 배워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모를 것이다). 도대체 선물이 뭘까.

◇幾何學은 圖形學으로 先物은 來物로

대차대조표라는 말도 있다. 회계학에 처음부터 나오는 貸借對照表를 우리말로 표기한 것이다. 이 말만 듣고 대차대조표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아마 상상력이 매우 뛰어날 것이다. 대차(貸借)는 빌려주고 빌린다는 말이고, 대조(對照)는 서로 비춘다는 것이고, 표(表)는 도표(圖表)를 가리킨다. 이렇게 풀어도 알기 어렵다. 대차대조표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기하학과 선물, 대차대조표를 배우면서 이런 의문을 가졌다. 선생님과 교수님에게 물어봐도 ‘왜 그런 걸 물어보느냐?’며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선생님 교수님도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의문은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우면서 풀렸다. 幾何學은 중국에서 Geometry를 음역(音譯)한 것이다. 幾何를 중국에서는 ‘지허’로 발음하는데 Geo를 지허라는 음으로 한 뒤에 학문이라는 學을 붙여 만든 말이다. 외래어를 번역할 때 음역과 의역(意譯)을 활용하는 중국으로서는 Geometry를 ‘지허쉬에(幾何學)’로 하여 원래의 의미와 통하게 했다.

하지만 幾何學을 그저 우리말로 기하학이라고 표기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뜻도 통하지 않을뿐더러 어원도 알 수 없게 되는 이상한 말, 기호가 되고 만다. Geometry에서 배우는 내용을 보고 도형학(圖形學)이라고 번역했다면 이해하기 훨씬 쉬었을 것이고, 기하학이 그렇게 인기를 끌지 못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先物을 선물로 표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先物은 일본에서 Futures를 번역한 말이다. 아니 일본에서는 중세시대부터 先物(사키모노라고 발음한다)가 있었다. Futures는 미래의 특정 시점에 물건을 거래할 것이라는 약정을 맺고 그 약정을 지금 사고파는 것을 가리킨다. 참으로 어려운 개념이다.

그런데 先이 일본에서는 미래라는 의미가 있어, 先物하면 Futures의 개념을 담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先은 과거의 일만 뜻할 뿐 미래의 뜻은 없다. 그러니 先物이라고 쓰면 개념적으로 어렵다. 先物을 그저 선물로 표기하면 더욱 알쏭달쏭이다. 우리식 한자로 하자면 래물(來物) 또는 후물(後物)로 하든가, 순 우리말로 뒷물이라고 하는 게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대차대조표는 일본에서 Balance Sheet를 貸借對照表로 번역한 것을 그대로 한글로 표기한 것이다. 이는 기업이나 개인의 재산 상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상황표이다. 요즘에는 자산현황표라고 바꿔 부르기도 하니 그나마 그나마 다행이다.

◇살별 이사랏 길마 새재 한밭…, 잃어버린 예쁜 우리말 되살려야

샛별은 ‘새로 난 별’ 또는 ‘새벽의 별’을 줄인 말이다. 새벽하늘에서 보이는 금성을 가리킨다. 저녁에 보이는 금성은 개밥바라기별이라고 부른다. ‘개에게 밥을 주면서 바라보는 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금성은 한글일까. 금성의 한자인 金星은 우리말이 아니고 중국말일까.

살별이라는 살가운 말이 있다. 그런데 살별이 무엇인지 아는 한국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혜성이라고 하면 알 것이다. 살별은 혜성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혜성이 꼬리를 갖고 있는데 그것이 살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살은 화살을 가리킨다. 혜성의 한자인 彗星도 꼬리별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彗의 훈(訓, 뜻)은 꼬리별이다.

그렇다면 이사랏과 길마는 무엇일까. 이사랏과 길마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앵두와 안장은 알 것이다. 이사랏은 앵두, 길마는 안장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앵두는 櫻桃의 표기이고(앵도인데, 모음조화에 따라 앵두가 됐다), 안장은 鞍裝의 표기이다.

우리말을 요즘은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그러면 순은 무슨 뜻일까. 순은 순수하다, 섞임이 없다는 뜻을 가진 한자 純이다. 그럼 순은 우리말일까, 한자일까?

초등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것이 ‘반대 여론’에 밀려 보류됐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반대 여론이라는 게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한 일부일 수 있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 ‘침묵의 다수’는 한자 병기를 찬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중요한 정책은 일부 반대여론을 극복하고 추진해야 하는데 안타깝다.

사례를 몇 가지 더 들어보자. 괴외하다는 말이 있다. 적막하고 적료하다는 뜻이다. 寂廖를 적료라고 쓰고, 寂寞을 적막이라고만 하는 것보다 적료(寂廖) 적막(寂寞)이라고 쓰는 게 훨씬 의미를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서늘코슬프다는 좋은 말도 있다. 처량하다는 말이다. 凄凉을 처량(凄凉)이라고 하는 것과 처량이라고 하는 것, 어느 게 뜻을 알기 쉬운가. 아아라하다는 말은 창망(滄茫)하다는 옛말이다. 滄茫을 창망이라고 쓰고 한글이라고 주장하면, 아아라하다는 말을 잊고 지내는 건 무엇이라고 부를까.

아름다운 땅이름(지명, 地名)도 마찬가지다. 두물머리는 양수리가 됐다. 그런데 양수리는 무슨 뜻일까. 양수리(兩水里)로 하면 ‘두 물이 있는 마을’이라고 알 수 있겠지만 양수리로만 쓰면 암호다.

한밭 한티 새재는 대전(大田) 대치(大峙) 조령(鳥嶺)이 됐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말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사람의 성과 이름을 바꾸는 창씨개명(創氏改名)과 함께 땅이름도 일본식 한자말로 바꿨다.

한글은 한자(漢字) 문화권에서 꽃피운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글이다. 서양식 운문학이 태동도 하지 않았던 1446년에 현대 음운론을 뛰어넘는 『訓民正音解例本(훈민정음해례본)』을 만든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한글을 사랑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0월9일을 국경일인 ‘한글날’로 지정해 쉴 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한자를 배격하는 것이 한글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한자가 있어야 한글이 더욱 풍부해지고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한자와 한글은 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돕는 보완적 관계다. 한자를 쓰지 않는 것은 한글을 절름발이로 만드는 일이다.

한글 사랑은 한자 배격이 아니라 아름다운 우리말을 더욱 많이 만들어 내는 일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강제적으로 없어진 고운말(새재 한밭…)과 옛날에 쓰였던 예쁜 말(살별 이사랏 아아라하다…)을 되살리고 △일본과 중국에서 번역한 학문용어(기하학(幾何學) 무차별곡선(無差別曲線) 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와 하루에도 수십 개씩 들어오는 외래어(SNS 페이스북…)를 한번 들으면 알 수 있는 우리말로 바꾸고, △갈수록 심화되는 우리말 파괴(고터; 고속터미널, 중박; 중앙박물관…)를 막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글 사랑을 주장하는 한글학회는 한자병기를 반대하는 데 돈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한글을 더욱 풍부하고 발전하는 언어로 가꾸는데 더 힘써야 하지 않을까.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수 작성일
440 “초교 교과서에 한자 병기해 가르쳐야”… 학술대회서 목청 어문정책관리자 2097 2015.12.02
439 "쉽고 정확한 한문고전 번역서 없어 안타까웠죠" 어문정책관리자 2182 2015.11.27
438 한류 날개 달고 세계로 50년 맞은 고전번역사업 어문정책관리자 2175 2015.11.25
437 [동아광장/최진석]문자가 삶과 사유의 높이-넓이를 결정한다 어문정책관리자 2096 2015.11.11
436 "漢文으로 동아시아 문학사 집필하자" "한민족 공동체라면 곧 한국 문학" 어문정책관리자 2083 2015.11.05
435 한글전용이 옳다면 국정 교과서도 옳다 어문정책관리자 2040 2015.11.04
434 글로벌시대에 뒷걸음만 치는 세계사 교육 어문정책관리자 2068 2015.10.30
433 내가 만난 중국인/장효택 전 에너지관리공단 경남지사장 어문정책관리자 2169 2015.10.28
432 강신호 동아쏘시오 회장의 특별한 한자(漢字) 사랑 어문정책관리자 2263 2015.10.28
431 [권순활의 시장과 자유]동북아 외톨이 ‘한자 문맹’ 어문정책관리자 2040 2015.10.28
430 “6.25는 북침”, 오해는 한자를 잘 몰라서… 어문정책관리자 2148 2015.10.28
429 강동구, 모든 사업에 ‘청소년 교육’ 영향 평가한다 어문정책관리자 2179 2015.10.26
428 “모국어가 공부의 열쇠다” - 핀란드 교육전문가 정도상 어문정책관리자 2210 2015.10.16
427 ‘초등학교 한자병기 옳은 일인가’ 반론 어문정책관리자 2119 2015.10.15
426 [인터뷰] 진태하 "한국어 제대로 알려면 초등 한자교육 필요해" 어문정책관리자 1998 2015.10.14
425 이근면 인사혁신처장 "공무원들 한자문맹 심각한 수준" 어문정책관리자 2172 2015.10.14
424 [우리말로 깨닫다] 한글날을 욕하다 어문정책관리자 2078 2015.10.08
교수도 몰랐던 말, '기하학' 뜻을 아시나요? 어문정책관리자 2171 2015.10.08
422 초교 교과서 한자병기…“초교생 어휘·독해력 수준 향상” vs “학생.. 어문정책관리자 2130 2015.10.08
421 “국민 62.8%,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해야 한다” 어문정책관리자 2115 2015.10.08
후원 : (사)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사)한국어문회 한자교육국민운동연합 (사)전통문화연구회 l 사무주관 : (사)전통문화연구회
CopyRight Since 2013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 All Rights Reserved.
110-707.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4-6 낙원빌딩 507호 (전통문화연구회 사무실 내) l 전화 : 02)762.8401 l 전송 : 02)747-0083 l 전자우편 : juntong@juntong.or.kr

CopyRight Since 2001-2011 WEBARTY.COM All Rights RESERVED. / Skin By Webar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