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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놀면서 배우면 안 돼?|

한자, 놀면서 배우면 안 돼?

서울 북한산초등학교 6학년이 말하는 ‘교과서 한자 병기’에 대한 생각들 “융합교육으로 복잡한데 거기다 한자까지?” “우리가 당사잔데 우리 얘기를 듣고 결정해야지”

한겨레 21 2015.09.02



8월26일, 북한산초등학교 6학년 6명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어린이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한 견해를 표현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해결의 실마리는 늘 당사자에게 있다.

8월24일, 충북 청주 한국교원대에서 ‘초등학교 한자 교육 활성화를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가 주최하고 교육부가 후원했다. 이 자리에서 김경자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장은 “(2018년부터 적용되는)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교 한자 교육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초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적정 한자 수로 300~600자, 한자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단어 옆 괄호 안에 한자를 쓰는 방식, 교과서 날개나 각주에 한자를 쓰는 방식 등을 제안했다.

공청회란 정책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정책 방향을 정하는 자리다. 그러나 이미 ‘한자 교육 활성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 밝혀졌다. 그 방법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결국 공청회에서는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를 찬성하는 시민단체와 반대하는 시민단체 간에 고성이 오가며 몸싸움이 벌어졌다. 김 위원장은 초등학교 한자 교육이 필요한 이유로 2009년, 2010년에 시행된 연구에서 교사·학부모 다수가 ‘한자 교육의 필요성에 찬성’했음을 들었다.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이 연구가 교육부의 정책연구로 질문이 편향돼 있다고 비판한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한자를 새롭게 배워야 하는 사람은 초등학생인데, 초등학생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한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가진다(유엔 아동권리협약 제12조). 서울 북한산초등학교에서 8월26일 만난 여섯 아이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때로는 장난스럽게, 때로는 진지하게 임한 그들의 토론에는 정책을 결정하기 전 귀담아들었어야 할 말이 많았다.


아는 한자가 있어?

황다경(다경)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이지윤(지윤) 한 일~ 두 이~ 석 삼~ 넉 사~. 미칠 광.


김현우(현우) 경험할 경.

김나영(나영) 바를 정.

김강민(강민) 옥돌 민. 강할 강.

이석현(석현) 난 아는 한자 없어.


한자를 아는 친구들은 한자를 어떻게 알게 됐어?


다경 나는 <마법천자문>. 그리고 어릴 때 할아버지가 무릎에 앉혀놓고 ‘자, 이건 한자란다’ 하고 가르쳐주셨어.

강민 나는 한자 문제지를 풀었어.

지윤 나는 학습지로 배우다 재미없어서 그만뒀고 <태극천자문>이라는 만화를 봤어. 지금 공부방 교재 뒤에도 한자가 있어.

현우 나는 학습지. 아까 말한 ‘경험할 경’도 이번주 학습지에서 배웠어.

나영 나는 유치원 때였나 어린이집 다닐 때였나 배웠는데 지금은 다 까먹었어.

한자 공부해본 친구들은 어때? 재밌어?

지윤 노잼. 핵노잼. 내가 한자랑 안 맞을 수도 있지만, 다른 건 배우면 재미있는데 한자는 배워도 기억이 안 나고 지금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도 않아.



현우 언어에 관심이 없어? 나는 책을 읽다가 배운 한자를 보면 생각이 나던데.

지윤 언어엔 관심이 있어. 그것만 관심이 없어.

강민 나는 하나하나 알게 되는 게 재미있었어.

다경 <마법천자문>은 재밌어. 지금 20 몇 권까지 갖고 있는데, 보니까 30권까지 나왔더라구. 이번에 다 지를 거야.



2018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300~600자의 한자를 단어 옆에 괄호를 치고 함께 쓰거나 각주 등으로 달아놓는 방안이 추진된다고 해. 초등학교 교과서에 지금보다 많은 한자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현행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초등학교 3·4·5학년 도덕과 교과서에 15건, 5학년 사회과 교과서에 2건, 5학년 수학과 교과서에 1건 등 일부 한자 병기가 이뤄지고 있다.)

다경 반대! 동음이의어를 구분하려고 배운다는데, 그거 알려고 한자 배우는 시간에 사전을 보면 되지. 사전을 많이 보면 단어의 뜻을 분명하게 아는 데도 더 도움이 돼.

나영 나도 필요 없다고 생각해. 어차피 한자는 중학교에서도 배우는데 굳이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서에 한자를 넣어 배울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지윤 나도 반대야. 평소에 국어 배우고 수학 배우는 것도 머리 아픈데 거기다 한자까지 추가해 배우면 공부에 더 흥미가 없어질 것 같아. 오히려 너무 어릴 때 배우면 한자는 재미없는 과목이라는 선입견만 생길 것 같아. 안 그래도 지금 융합교육 때문에 국어랑 수학이 막 섞여 있어서 수학 문제 풀 때 국어 해독하기도 힘든데 거기에 한자까지 쓰여 있으면, 아휴, 짜증 나서 연필을 부러뜨릴 수도 있을 것 같아.

현우 나는 찬성이야. 중학교에 가서 배울 건데 미리 공부해놓으면 그때 쉬워지지 않을까? 또 회사에 들어가려면 쓰는 종이 있잖아. 거기에다 이름을 한자로 써야 하니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석현 나도 찬성. 곱셈·나눗셈 하기 전에 더하기·빼기부터 배워야 하듯 중학교 가서 어려운 거 배우기 전에 기초를 먼저 다지면 좋을 것 같아.

다경 중학교 때 기초를 배우면 되지 않아? 이름 쓰는 것도 그때 배우면 될 것 같은데.

지윤 교과서에 넣지 않고 한자를 배우는 방법은 없나? 놀면서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으면 좋겠는데. 교과서에 한자가 쓰여 있으면 한자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고 ‘어려운 것’이라는 선입견이 생겨서 중학교에 가서도 싫어하게 될 것 같아.

강민 교과서에 한자 넣지 말고 놀이기구나 정자 같은 데 한 글자씩 넣어놓으면 놀다가 보면서 ‘아, 이게 한자구나’ 생각하면서 재밌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지윤 맞아. 괜히 교과서에 넣어놓으면 공부가 늘어나는 느낌이야. 

 


나영 학교 계단에 영어 단어 쓰여 있는 것처럼 한자를 써도 좋겠다.

다경 세종대왕님이 만날 중국어만 쓰다가 겨우 제대로 된 한글을 만들어 배포했는데, 우리가 꼭 굳이 다시 한자를 어렵게 배울 필요가 있을까? 배운다고 해서 크게 쓸 데도 없고, 천자문을 외우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잖아. 그리고 천자문 외우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 같지도 않아.

현우 그래도 한자를 배우면 중국 문화를 알 수 있고 우리나라 문화와 중국 문화를 비교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

지윤 헷갈리는 단어를 제대로 알 수 있고 유식해 보일 수는 있겠다.

한자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들어가면 공부에 대한 부담이 더 많아질까? 놀 시간은 충분해?

지윤 부담이 많아진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난 공부방 갔다가 집에서 영어를 2시간 하고 수학을 1시간 하니까 당연히 놀 시간이 부족해.

나영 나는 학원 안 다녀서 놀 시간은 넘쳐나는데, 그래도 24시간이 너무 짧아.

석현 좀더 정신이 없을 것 같아.

강민 난 교과서에 한자가 있으면 호기심을 가지게 될 것 같아.

현우 나는 학습지를 아홉 과목 해서 밤 11시까지 선생님이 오셔. 평일에는 못 놀고 주말에만 놀아. 아이들은 성장하는 시기라 놀아야 하는데…. 그렇지만 한자가 교과서에 있다고 해서 공부가 더 힘들어질 것 같지는 않아. 학교에서만 배우면 되니까.

다경 월·수·금 7시에 방송댄스 하는 거 빼고는 어디 다니는 곳이 없어서 나는 놀 시간은 충분해. 하지만 한자가 교과서에 있으면 더 부담스러울 것 같아. 그렇게 된다면 맨날 사전 지참! 난 그럼 한자를 검정펜으로 다 지워버릴 거야.

어린이들이 배우는 내용을 결정할 때 어린이들의 얘기를 들어야 할까? 어린이는 아직 미성년자이니까 공부의 큰 그림을 결정하는 것은 어른이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다 같이 아니지. 당연히 우리한테 물어봐야지. 

 


지윤 배우는 사람이 우린데. 엄마·아빠가 우리 대신 배워주는 게 아니잖아.

다경 미래가 우리라고 하면서 왜 우리 의견을 안 듣는 거야.

지윤 엄마·아빠의 의견도 중요한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의견이라고 생각해. 제1의 당사자가 우리니까 우리 의견을 더욱더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해.

현우 공부는 우리가 하는 거니까 어른들의 의견이나 조언도 참고할 수 있겠지만 어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12살이 되면 두뇌의 95%가 완성되잖아.

직접 학교 시간표를 짤 수 있다면 어떻게 하고 싶어?

현우 국·영·수가 너무 많아. 다른 과목을 늘려야 해. 악기 배우는 시간도 만들고.

지윤 직업 체험을 많이 하면 좋겠어. 나는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기자도 되고 싶고 군인도 되고 싶고 형사·선생님도 되고 싶은데, 직업 체험을 하는 시간이 많으면 진짜 뭐가 되고 싶은지, 나한테 뭐가 잘 맞는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석현 우리 진로체험학습 가잖아.

지윤 한 번밖에 안 갔잖아. 더 자주 하면 좋겠어.



강민 나는 축구선수가 꿈이니까 축구 과목이 있으면 좋겠어.

나영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교실 밖에서 아이들끼리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자유놀이 시간.

다경 난 자기주도학습 시간을 바꾸고 싶어. 자기주도학습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학습장’을 쓰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그거 쓰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해. 그 시간에는 시키는 거 말고 말 그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

강민 너 책 볼 거지? 책벌레.

다경 저는 역사를 사랑하는 바~입니다.

지윤 1~2주에 한 번씩 자기가 그동안 공부한 걸 서로서로 알려주는 시간은 어때? 반 애들한테 자기가 공부한 거 자신 있는 거 알려주고, 또 자기 재능이 있으면 그걸 다른 친구들한테도 나눠주고.

강민 난 1교시 치킨, 2교시 피자, 3교시 햄버거.

다 같이 푸하하하~.

1시간여의 이야기가 끝났다. 마치면서 아이들에게 ‘교과서 한자 병기’에 대한 찬반 의견을 다시 물어봤다. 처음에 찬성 의견을 밝혔던 석현이는 반대로 돌아섰다. 찬성·반대를 넘어 귀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놀면서 배우는 방법은 없을까?” 지난해 9월 교육부가 한자 교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기 전, 당사자인 아이들의 이야기, 다양한 교사의 이야기를 더 세밀하게 들었다면 ‘한자 교육 활성화 방안’의 향방은 지금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금 ‘한자 교육 활성화 방안’에는 ‘무엇을’만 있고 ‘어떻게’가 없다. 그리고 ‘왜’에는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많다.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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