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한자문화권
매일경제, 원철 해인사 승가대학 교수 2014.04.28 23:34:51
교토에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일행과 떨어져 공항까지 혼자 가야 했다. 약간의 긴장감이 뒤따르긴 했지만 그래도 길 떠난 느낌을 짧은 시간이나마 좀 더 누릴 수 있었다. 정거장이 바뀔 때마다 실시간으로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안내방송과 함께 자막으로 처리된 3개국 문자가 차례대로 친절하게 뜬다. 창밖 풍광도 낯설지 않고 얼굴 생김새도 비슷하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토종형`을 제외하고는 서로의 출신 국가를 짐작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과 중국 나들이는 이웃 마을에 온 것 같다. 거리가 가까운 탓도 있지만 한자문화권이라는 동질감이 더 큰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눈으로 한문을 보는 생활에만 익숙하다 보니 늘 일방 소통으로 만족해야 했다. 관광객으로서 지출 위주인 갑(甲)의 입장에선 필담(筆談)만으로도 크게 불편할 일이 없다. 하지만 지갑을 열도록 만들어야 하는 을(乙)의 관계가 된다면 사정은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눈(문자)보다는 입(말하기)과 귀(듣기)의 역할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쌍방 소통은 문자 `눈팅`만으로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가끔 차 한잔을 나누는 중의학 전공의 지인은 "3개국 공통한자로 선정된 808자 정도는 아예 초등한자 교육부터 3국의 읽는 방법까지 같이 가르친다면 힘들이지 않고 외국어 2개는 그저 덤으로 얻어질 것"이라고 나름의 비방책을 제시했다. 화기애애하게 `건배(乾杯ㆍ한)!` `건뻬이(중)!` `간빠이(일)!`만 외쳐도 된다면 세종께서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같은 지방의 절인데도 사(寺)라는 글자를 `지(じ 法隆寺 호류지)`라고 읽고, 또 `데라(でら 淸水寺 기요미즈데라)`라고도 읽어야 하는 현실은 어떤 외국어건 만만해지려면 적지 않은 노력이 뒤따라야 함을 보여준다.
작년(2013) 한 해 동안 한국 644만명, 중국 564만명, 일본 563만명이 상대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작은 숫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해마다 그 나라 전체 인구 숫자 이상이 상호 방문하는 유럽연합(EU)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만큼 또 다른 벽이 있다는 방증이다. 한자문화권 간의 정치적 갈등 해소 방편은 활발한 민간 교류가 그 해답일 것이다.
내가 남긴 몇 개 발자국이 소비성 유람이 아니라 이웃 3국이 구동존이(求同存異 :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한다)의 열린 마음을 지향하는 데 일조하길 바랄 뿐이다.
[원철 해인사 승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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