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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말 광] 해야 할 일이 '깊은 산속'?|

[바른말 광] 해야 할 일이 '깊은 산속'?

부산일보 이진원 교열팀 2015.01.20



컴퓨터가 없던 시절은 한창 한자를 쓰던 때이기도 했다. 그 당시 취재기자들은 지금처럼 노트북으로 기사를 보낼 수 없었으니, 급할 땐 사건 현장에서 회사로 전화를 걸어 기사를 부르곤 했다. 가장 급박하게, 그러면서도 가장 정확하게 구술해야 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한데, 그럴 때 가장 곤란한 게 한자로 불러야 하는 사람 이름이며 주소 따위였다. 특히, 성을 틀리면 큰일이어서 신경들을 바짝 썼는데, 그 때문에 한자를 부르는 방식도 절로 발달했다. 이를테면 '柳'는 "버들 류", '劉'는 "묘금도 유"로 구별하는 식이었다.('묘금도(卯金刀)'는 한자 '劉'를 파자한 것.) 또 '丁'은 "고무래 정", '鄭'은 "당나귀 정"이라고도 불렀다. 생김새를 보고 특징을 잡아냈던 것이다.
 
성은 아니지만, 아주 빼어난 작품(?)으로는 "이까 윤(允), 탱크 설(卨)"이 있었다. 글자 모양을 보고 붙인 이름인데, 듣는 사람마다 무릎을 칠 만한 그런 작명이었다('이까'는 오징어의 일본말). 뭐,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다. 분명한 것은, 지금은 저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라는 이야기다. 한자 사용이 줄어들면서 받은 혜택인 것.
 
하지만, 그렇게나 오랫동안 자리를 자치했던 한자와 한자말이 호락호락 물러날 리는 없다. 한글로만 쓰더라도, 한자말의 속뜻을 헤아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아직도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해결해야 할 것들이 첩첩산중이었던.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기도 힘든 상황에서 저 때문에 그 사람의 인생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느 월간지에 나온 구절이다. 한데, '첩첩산중'이 잘못 쓰였다. '여러 산이 겹치고 겹친 산속'이라는 뜻인 저 말은 그냥 '위치'를 가리킬 뿐인 것. '갈수록 태산'이나 '겹겹이 쌓였다'가 아니라 단순히 지정학적 설명이어서, '해야 할 일이 첩첩산중이다'처럼 쓰면 안 된다는 얘기다. '첩첩산중'이 아니라 '첩첩'에서 멈춰야 했던 것. 

한자말이 어려운 것은 한자가 뜻글자이기 때문이다. 소리글자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 속뜻이 있어서, 행여 그걸 놓치면 엉뚱한 말을 하게 된다.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모처럼 바쁘다며 웃었다'라는 말이 바로 그런 예. 여기서는 '역임'이 틀렸다. '여러 직위를 두루 거쳐 지냄'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러'라는 조건에서 알 수 있듯이 직위를 달랑 하나만 언급하고는 '역임했다'고 하면 안 된다. '판매부장, 인사부장, 총무부장을 역임하고 이사에 올랐다'처럼 써야 한다는 말이다. 실수를 막으려면 '거쳤다'나 '지냈다'로 쓰면 된다. 

어렵고 복잡한 말 때문에 실수하지 않으려면, 가장 간단하면서도 잘 아는 것을 골라 쓰면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아는 것'이다. 말로 빚어진 실수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은 바로 '유식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유식은, 절대로 공부 없이 얻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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