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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文盲 - 조선일보 2014.01.02|

만물상

한자 文盲 

조선일보 2014.01.02 05:45

 
'몽롱하다'는 말이 있다. 사전에 '흐릿하다'라고 뜻풀이돼 있다. 한자로는 '朦朧'이라고 쓴다. 朦은 '달이 뜰 때 아롱거릴 몽', 朧은 '달이 질 때 아롱거릴 롱'이다. 그러니까 '몽롱하다'는 저녁이나 새벽 무렵 달 언저리가 희뿌옇게 돼 윤곽을 알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몽롱하다'는 거의 우리 토박이말처럼 쓰고 있어 굳이 한자로 표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나를 알면 그 뜻이 훨씬 실감 있게 다가온다.

▶대다수 사람은 이런 언어의 재미를 맛보기 힘들다. 40년 넘게 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막아 '한자 문맹(文盲)'이 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공격으로 폭침된 천안함은 초계함이었다. 지방 국립대 국문과 교수가 수업에서 초계함이 어떤 임무를 띤 배인지 물었다. 맞히면 학점을 5점 더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답을 못했다. '망볼 초(哨)' '경계할 계(戒)'를 알면 쉽게 점수를 올릴 수 있는 문제였다.

▶어느 잡지에서 '차량용 블랙박스 첨단 기술 전쟁'이라는 기사를 봤다. 제목에 '내비게이션 전철 밟을 것'이라고 돼 있다. '전철(前轍)을 밟다'는 앞사람 실패를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내비게이션 과당 경쟁으로 제조업자들이 망했고 블랙박스도 같은 길을 갈 거라는 얘기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다. 내비게이션이 지도책을 제치고 운전자 필수품이 됐듯 블랙박스도 필수품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글쓴이는 '전철을 밟다'를 정반대 의미로 썼다.

▶치과에 가 사랑니를 뽑으러 왔다고 하니 "아, 발치하시게요?" 한다. 이를 뽑고 나올 땐 "다음 내원일은…" 하며 날짜를 일러준다. 쉬운 우리말로 해도 될 때 굳이 한자어를 쓰고 정작 한자의 뜻을 정확히 알고 써야 할 때는 깜깜이가 된다. 어느 인터넷 매체가 유럽컵 축구 소식을 전하며 "선수의 딸이 아빠가 방금 골을 넣은 골문 옆에서 망중한을 즐겼다"고 썼다. '바쁜 가운데 한가한 짬을 얻어 즐김'이라는 망중한(忙中閑)이 이 대목에 왜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다.

▶조선일보가 새해 특집으로 '한자 문맹 벗어나자' 연재를 시작했다. '김구 선생은 암살(暗殺)로 돌아갔다'고 하자 "암(癌)에 걸려 돌아가신 거냐"고 묻는 대학생도 있다고 한다. 한자 교육 문제는 젊은 세대가 부모 이름도 한자로 못 쓴다고 개탄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한자 문맹이 늘어 정상적 언어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자 교육 반대론자들도 자기 아들딸, 손자·손녀가 한자를 몰라 엉뚱한 말을 하고 다니는 건 원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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