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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民族正氣를 바로잡기 위해|


[기고] 民族正氣를 바로잡기 위해

영남일보 안병렬 연변과학기술대 한국어과 교수 22016.02.03



마 전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나는 대구에서 새벽차를 타고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가서 한 시간 가까이 떨다 왔다. ‘한국언어정책 정상화 추진위원회’가 주최한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倂記)하자’는 취지의 시위가 펼쳐지기에 참석한 것이다. 이 일을 추진하는 고문은 대개 전직 국무총리·대학 총장·장관들이라 잘 모르나 실제 일을 맡아 하는 이들은 거의 다 친구였다. 

나는 언어야말로 그 민족의 정체성을, 나아가 민족 자체를 지킨다고 믿는다. 근래 중국에 살면서 만주족의 처참한 모습을 본다. 100여 년 전만 해도 중원 천지를 호령하던 청나라, 그 나라의 주인이던 위대한 만주 민족이 아닌가. 그런데 그 민족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한 마디로 없다. 호적상에는 있고 행정상 지도에는 자치주도 있고 자치향도 있지만 가보면 만주족적인 게 없다. 언어를 잃고 민족 자체마저 잃은 것이다. 참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언어가 자꾸 외래어에 침식당한다. ‘학교 차’라고 하면 될 걸 굳이 ‘스쿨 버스’라 한다. ‘집’은 자꾸 없어지고 ‘하우스’와 ‘홈’이 그 자리를 메운다. ‘性’이라 하면 되는데 왜 꼭 ‘섹스’라 해야 하는지. 그 어감에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외래어가 고유어를 잠식하는 데 정부가 또 앞장선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한국철도’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왜 굳이 ‘코레일’이라 하는지. 더욱 가관은 ‘대구도시철도’를 ‘디트로’라 부르는 것이다. 그럼 대전에서는 무엇이라 하는지 궁금하다. 나아가 ‘고속열차’라 하면 될 걸 굳이 ‘KTX’라 하는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KTX’의 바른 뜻을 아는 사람이 국민 가운데 몇 명이나 될까. 

이 밖에도 영어, 일어, 혹은 국적 불명의 말에 빼앗긴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어느덧 우리말을 쓰면 고리타분하고 촌스럽고, 외래어를 써야 유식하고 세련되게 들린다. 벌써 그 의식 속에 자기도 모르게 주체성을 잃는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그럼 한자는 외래어가 아니냐’고 반론을 할 것이다. 맞다. 한자도 한문도 외래어다. 그래서 그 외래어 ‘산’과 ‘강’이 고유어 ‘뫼’나 ‘가람’을 삼켰다. 이를 인정하면서 우리말을 지키지 못한 우리 조상을 원망하며 가슴 아파한다. 그렇다고 다시 또 국적 불명의 서양어, 일어가 우리말을 삼키는 걸 가만두고 있어야 할 것인가. 이제는 우리말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우리말의 한계를 어디까지 그어야 하는가. 한자로 이루어진 말도 우리말로 인정하여야 하지 않는가. 안타깝게도 우리 국어에는 그런 말이 60%가 넘는다. 그 현실 바탕에서 한자어를 바로 이해하고 써야 한다. 그냥 막연히 ‘학교’라고 인식하는 것보다 ‘學校’라 하여 배우는 집으로서의 학교로 이해하면 언어생활 가운데에서 저절로 그 사유의 깊이가 깊어질 게 아닌가. 그런데 왜 이를 막는가. 그러면서 서양어는 마구잡이로 써서 우리말을 혼탁하게 하는 게 어디 제대로 되는 언어 정책인가. 우리말을 바로 쓰고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꼭 한자 교육이 필요하다. 이 일은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큰일이다. 

시위에 참가하니 놀랍게도 20여 명의 교수들이 모였다. 뜻을 같이하니 더욱 반가웠다. 늙은 분들도 많았다. 이 추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참석하는 그 열정이 참 장하다고 생각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연락은 되었다는데도 언론사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하여야만 하는 이 나라가 참 답답하고 한심스러워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고문이라는 저분들, 총리요, 총장이요, 장관이요 하는 분이 현직에 계실 때엔 왜 이런 주장을 못하였는지 안타깝다. 아니, 하고자 하여도 반대 세력이 더 강하여 못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주장도 뭐라고 하는지 좀 듣고 싶다. 설마 아예 우리말을 없애고 영어를 국어로 하자고는 안 하겠지. 그러지 않고 우리말이 있어야 한다면 제대로 올바로 가르쳐야 하지 않는가. 우리말의 60% 이상인 한자말을 제대로 알고 쓰도록 해야 하지 않는가. 이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니 이런 시위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참 한심하고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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