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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황영식 논설실장 2015.07.30


‘역전의 용사’라는 말이 있다. 장년층 위로는 대강 뜻을 안다. 하지만 그 아래 세대로 가면 ‘역전(逆轉)의 용사’, 즉 ‘뒤집기에 능한 용사’로 여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영화 ‘역전의 명수’나 한때 유행어였던 ‘인생 역전’의 영향일까. 더러는 쏟아져 나온 조폭 영화 때문인지, 역전(驛前)을 무대로 한 주먹다짐에서 용맹을 떨쳐온 건달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있다. 한자어 ‘역전(歷戰)’을 곱씹어 ‘숱한 전투를 거친 용사’라는 바른 뜻에 이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 한국일보의 연례 스포츠행사인 ‘경부 역전 마라톤대회’의 ‘역전(驛傳)’도 젊은 세대에는 쉽지 않은 말이다.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웠을 ‘역참(驛站) 제도’를 떠올려야 ‘서울~부산을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 이어달리기 형식으로 펼치는 마라톤 경기’라는 참뜻에 이를 수 있다. 역 앞(驛前)을 달리는 마라톤대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하다. ‘역전앞’이란 겹말이 ‘외갓집’‘처갓집’처럼 널리 쓰인 지 오래여서 ‘역전(驛前)’의 뜻을 안다는 게 외려 신통할 만하다. 

 

▦ ‘역전앞’과 같은 겹말의 탄생 배경은 두 가지로 짐작할 수 있다. 한자어를 구성하는 바탕 한자에 대한 이해가 달려 고유어를 덧붙였을 수도, 뻔히 알면서도 강조하려는 생각에 서 그랬을 수도 있다.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신기하게도 ‘역전앞’은 틀린 말로, ‘외갓집’ ‘처갓집’은 바른말로 나누었다. ‘외가(外家)’는 물리적 공간이자 가족관계이기도 해서, 후자의 경우에 공간을 가리키려면 ‘외갓집’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냥 ‘=외가’라고 한 뜻풀이에 맥이 풀렸다.


▦ 연령층이 낮을수록 겹말 쓰임새가 잦다. ‘당숙(堂叔) 아저씨’나 ‘이모(姨母) 아주머니’는 기본이다. 최근에는 ‘~감(感)’과 ‘~심(心)’이 넘친다. ‘행복(幸福)’이나 ‘배려(配慮)’면 충분한데 굳이 ‘행복감’‘배려심’이라고 한다. ‘즐감’‘심쿵’등 줄여 말하기의 유일한 장점이라 할 ‘언어경제’에도 어긋난다. ‘자존감(自尊感)’을 ‘자존감(自存感)’, 즉 ‘자기존재의 실존적 확인’으로 여겼다가 ‘자존심’ 그냥 그대로인 걸 알고 실소한 일도 있다. 나날이 심화하는 한자 감각 둔화에 우리말ㆍ글의 위기를 절감한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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