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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직관과 통찰력은 경험의 산물이다|

[시론] 직관과 통찰력은 경험의 산물이다

건설경제 황광웅 건화 회장 2015.08.20




   

 ‘돌부처’ 이창호 9단이 ‘제비’ 조훈현 9단의 내제자(內第子)였던 때의 이야기다. 이창호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6년간 조훈현 집에 머물며 바둑을 배웠다.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바둑천재로 평가받았던 이창호는 어린 나이에 마침내 스승을 연파하고 바둑 정상에 오른다. 조훈현 부인의 회고담이다. “둘이 집으로 돌아올 때 분위기를 보면 누가 이겼는지 금세 알아봤어요. 창호가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오면 제 남편이 진 거고, 창호가 편안한 얼굴로 들어오면 남편이 이긴 거예요.” 여자의 직감(육감)은 놀랍도록 예리하고 정확하다.

 필자는 아침식사를 거의 꼭 챙겨 먹고 출근한다. 어느 날인가 밥맛이 없어서 젓가락을 몇 번 끄적대다가 그냥 일어났다. 아내가 대번에 눈치채고 묻는다. “당신, 회사에 무슨 고민거리가 있는 거죠?” 여자의 직감을 피해갈 수는 없는 일인가 보다. 아내에게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깜짝깜짝 놀란다. 회사 일이라는 게 맑은 날과 흐린 날이 계속 교차하기 마련이고 바깥일을 가족에게 내색하지 않는 게 삶의 모토인 만큼, 아침밥만큼은 언제나 유쾌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기로 했다.

 여자의 직감은 자식을 키워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엄마는 아기의 표정이나 울음소리를 듣고는 그 아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알아챈다. 이러한 경험들이 증조할머니에게서 할머니에게, 그리고 엄마에게로 유산처럼 계승되어 여자들은 우월한 유전인자를 갖게 된 것 아닐까. 여자들은 오감을 모두 동원하여 대화하고 소통한다. 언어라는 하나의 도구만을 이용하는 남자들에 비해 소통의 채널이 훨씬 다양하다. 그러니 ‘딱 보면 알아차리는’ 여자들의 선천적인 직감 능력을 남자들이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남자들이여, 여자를 속일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마라.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존 그레이가 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다. 책 제목에서 드러나듯 남녀 간의 ‘다름’을 잘 설명해 주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그렇다고 직감 능력이 여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누구든지 노력에 의해 후천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다. 흔히 직관, 통찰력이라고 부르는 능력들이 바로 그것이다.

 요즈음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느냐 마느냐로 논란이 일고 있다. 필자는 한자 병기가 가져올 플러스 효과에 점수를 높게 주고 싶다. 한자를 배우면 어휘에 대한 이해력이 풍부해진다. 우리말에는 한자어(표의문자)가 아주 많다. 그래서 한글로만 써놓으면 그 말의 속뜻을 알아보기 힘들고, 한자를 병기하면 의미 전달이 쉬워진다. 예를 들면 경복궁에 있는 향원정(香遠亭)은 향기가 멀리 퍼져 나가는 정자이고, 연못에 놓인 취향교(醉香橋)는 향기에 취한 다리라는 뜻이다. 한자를 병기하니 그 이름에서부터 은은한 향내가 풍겨 나오지 않는가. 한자를 배우는 아이는 촉(觸)이 발달한다. 공감하고 통찰하는 능력이 커지고 학습의 폭과 깊이도 남다를 수 있다.

 직관적 사고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엄밀한 논리적 추리과정을 거치지 않고 문제의 해답을 생각해내는 추리작용’이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온갖 데이터들을 골치 아프게 따져보지 않고도 ‘딱 보면 안다’는 것이다. 조짐을 읽어내는 능력, 큰 흐름 속에서 맥을 짚어내는 능력, 수많은 정보 속에서 기회와 위험 요인을 쏙 잡아내는 능력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직관과 통찰력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땀과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여름휴가 때 설악산 산행을 다녀온 분들이 많을 텐데 산행에서 얻은 경험의 폭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산책 삼아 비선대까지만 가 본 사람, 천불동계곡을 타고 양폭산장까지 올라가 본 사람, 땀 뻘뻘 흘리며 대청봉 정상까지 등정해 본 사람…. 이 중에서 누가 설악산의 능선, 계곡, 등반 루트를 자기 손금 보듯 훤히 꿰뚫어 볼까. 정상까지 등정한 사람이다. 올라간 높이에 비례하여 시야는 확장되는 법이니까.

 직장에서 흔히 겪는 한 가지 경험을 얘기해 보자. 며칠동안 머리 싸매고 연구하여 나름대로 완벽한 기안문을 만들었다. 자신 있게 결재를 올렸는데 상사는 한 차례 쓰윽 훑어보고는 결정적인 문제점을 귀신같이 찾아내 지적한다. 맥이 탁 풀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해진다. 딱 보면 알아채는 그분의 능력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

 분명 그분은 과거 실무자 시절에 자기가 맡은 일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은 열정을 쏟아 넣었을 것이다. 경험과 사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많은 책을 섭렵했거나 다양한 산업의 종사자들과의 네트워킹에도 열심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직관, 통찰력은 축적된 경험의 산물이다. 게걸스럽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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