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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한자어도 한국어, 마음 놓고 써라” 中에서|

고종석 “한자어도 한국어, 마음 놓고 써라” 中에서

고종석의 한국어 글쓰기 강좌 (3)

채널예스 김영빈


10월 8일, 벌써 세 번째 수업이다. 매번 시간이 모자란다던 고종석은 이제 조금 적응 된 듯 보였다. 수강생들도 전보다 많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수업의 모양이 갖춰지는 중이었다. 지난 시간에 이어 ‘한국어다운 한국어’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고종석은 한국어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했는데, 음성상징과 색채어 그리고 한자어가 바로 그것이다. 이날 수업은 주로 고유어와 외래어의 관계, 특히 한자어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숨 가쁘게 수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했다. 고종석은 지난 시간에 살펴본 한국어의 특징들을 간단히 정리했다. 특히 음성상징과 색채어를 적절히 활용하면 한국어다운 문장을 쓸 수 있다고 했다. 곧 이번 시간에 주요 테마인 한자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종석은 한국에서 사용되는 한자어는 크게 일본에서 들어온 한자어와 중국에서 온 한자어로 나눠볼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일본에서 온 한자어는 일본에 대거 유입되었던 네덜란드문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크게 발달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자어들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 대거 유입된다. 물론, 중국에서 유입된 한자어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오랜 시간 중국에 사대를 했던 조선에서 양반의 언어로 사용되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에서 한자어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종석은 ‘한자어’의 사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한국어 어법에 맞지 않는 일본식 조어는 피하는 것이 옳지만 한자어 자체는 이미 한국어의 일부분이라는 거였다.

고종석은 유럽의 예를 들어 과도한 한국어 순혈주의를 지적했다. 중세 영국에서는 프랑스 왕가가 궁중에 있으면서 상류층은 불어를 쓰고 하층민만이 영어를 썼던 역사적 경험이 있다. 이는 마치 조선 사회에서 양반들이 한자를, 중인 이하의 계급과 여성들이 한글을 사용했던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한국에서 ‘한자어를 없애자’고 하는 식의 운동은 하지 않는다. 이미 자기 언어로 정착된 것을 들어내는 일은 사실 불가능하다는 거다. 한자어를 없애면 한국어는 반 도막이 된다는 게 고종석의 생각이다.

보통 한자어는 고유어와 한 쌍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여름옷은 하의 혹은 하복과 쌍을 이룬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쌍을 이루는 한자어와 고유어를 마주하면 이 둘을 같은 뜻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한자어를 없애도 고유어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한자어 대신 고유어를 쓰는 게 더 한국어답다는 생각도 거기에서 시작된다. 같은 뜻을 가진 낱말이니 고유어로 대체하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하지만 고종석은 세상에 동의어는 없으며 유의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여름옷과 하복은 비슷하긴 하지만 같은 말은 아니라는 거다. 두 낱말이 서로 다른 뉘앙스와 용법을 가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한자어와 고유어는 1:1 대응을 하지 않는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고치다’는 ‘수리’, ‘치료’, ‘개정’ 등 여러 낱말과 대응한다. ‘고치다’는 말을 쓰면 넓은 범위로 뭉뚱그려지지만 한자어를 사용하면 조금 더 섬세한 한국어를 구사하게 된다. 고종석은 이런 한자어를 없애버린다면 한국어는 가난하고 메마른 언어가 될 거라고 했다.

게다가 한자어와 고유어가 서로를 대체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혈액’과 ‘피’는 유의어이긴 하지만 그 쓰임은 서로 다르다. ‘피바다’나 ‘피가 끓는다’의 경우를 떠올려 보자. 이럴 때 ‘피’를 ‘혈액’으로 바꾸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 또 ‘생명’은 다른 사물에 대해 비유적 사용이 가능하지만 ‘목숨’은 불가하다. ‘이 책은 생명이 길 거야’ 라는 말은 쓸 수 있지만 ‘이 책은 목숨이 길 거야’ 라는 말은 쓸 수 없다.

이런 예를 들며 고종석은 한자어를 사용하며 부담을 느끼지 말자고 했다. 그저 쓰고 싶은 어휘를 골라 쓰면 된다는 거다. 한자어 역시 한국어이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고유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한자어를 과하게 사용해 어려운 문장으로 독자들을 괴롭히는 건 지양해야 할 태도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한자어는 훌륭한 한국어다. 흔히 글을 잘 쓰려면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 어휘에는 한자어도 포함된다.

이어 고종석은 학교 문법에서 문제가 있다고 배운 ‘역전 앞’, ‘초가집’, ‘낙숫물’, ‘처갓집’ 등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사실 이 표현들이 굉장히 한국어답다고 말했다. 한자어가 들어간 한국어 문장에서 이런 식의 강조는 자연스럽게 사용된다는 거였다. ‘유언을 남기다’ 같은 말을 보면 ‘유언’이라는 말에 ‘남기다’를 뜻하는 ‘유’ 자가 들어 있는데도 우리는 ‘유언을 남기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어린 소녀’, ‘큰 대문’, ‘단발머리’ 같은 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런 표현이 한자어를 받아들여 활용하는 한국어의 한 방법일 뿐이라 생각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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