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漢字 박물관도 필요하다

중앙대 명예교수 김경수 2014.10.01(조선일보)

한글박물관이 오는 9일 개관한다. 한글이 창제돼 사용된 지 근 600년 만에 한글 역사를 총괄하는 박물관이 생긴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적·문화적 역량이 이를 통해 또 한 번 빛날 것이 확실하다.

국가가 주도해 세운 이 박물관이 우리 문자 전체를 통괄하는 박물관이 되지 못하고 한글에 국한된 박물관이 된 데 대해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문자에는 한자도 있기 때문이다. 이 한자(漢字)를 한자(韓字)로 써야 한다는 주장도 최근 제기되고 있다. 한글과 한자가 한자리에 나란히 보존돼 역사적 가치를 밝힌다면 우리 문화의 진면목이 더욱 세계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한글이 한자보다 우위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민족이라면 누구도 이 주장에 어깃장을 놓을 이는 없다. 한글 역사에 담긴 나라 사랑, 과학적 창제 원리, 쓰기·배우기 쉬움 같은 장점도 누구나 수긍하는 바다. 반면 한자에도 한글 못잖은 장점이 있다.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한자를 그 역사만큼 오랜 기간 들여와 쓰고 있다면 우리글화(化)한 것으로 봐야 한다. 한글과 한자를 혼용해 개화기까지 사용해 온 것도 이를 방증한다. 더구나 한자가 인성의 깨우침과 철학적 사유를 가능토록 하는 체계는 민족 정서를 전해주는 보고다. 이런 측면은 한글도 마찬가지다.

한자 옛 '고(古)'는 十과 口가 합해져 있다. 입(口) 하나를 30년으로 볼 때 열 개를 합하면 통시적으로 300년 세월을 뜻한다. 한자 하나하나에 담긴 심오한 의미가 이렇게 깊다. 이런 것을 한글과 함께 우리 2세들에게 가르치면 사고력·창의력·응용력이 몰라보게 신장될 것이다.

문화 독해력이라는 말이 있다. 지식·신앙·법률·도덕·관습 등 그 사회 구성원들이 이뤄놓은 총합이 문화다. 샤머니즘, 불교문화, 유교문화가 각 시대를 대표해 독특한 우리 문화를 형성해 왔다. 훈민정음,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선조들이 살아온 흔적들이 문자로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져 온다. 이렇게 전수받은 문화의 총체적 결과를 읽고 이해하는 힘이 문화 독해력이다. 한글과 한자가 융합돼야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고, 그 내용을 국내외에 널리 전파할 수 있다.

한글 박물관도 있어야 하고, 한자 박물관도 따라야 한다. 적어도 우리 문자는 한글과 한자가 따로따로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