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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세 칼럼] 한자의 뿌리|

[오현세 칼럼] 한자의 뿌리

시민일보 2014.09.04


한자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글들이 자주 보입니다.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우리말과 글에서 한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글전용론이 대세입니다. 그 주장의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글자가 아니다. 즉 외국어라는 것이고 둘째는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주장, 어렵다는 것은 인정 할 수 있습니다. 한글이 워낙 뛰어나게 쉽기 때문에 한글과 한자의 습득 난이도를 비교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지요. 실상 한자도 그 생성원리부터 배우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요소도 많지만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한자는 우리글자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과연 진실인지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자는 외래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과연 그럴까요?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조상들이 필독서로 공부한 대학의 핵심입니다.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개개의 성질과 가치를 파악하는 것이 격물이고 이를 통해 근본을 아는 것이 치지입니다. 근본을 안다는 것이 곧 진리, 진실을 깨우치는 일에 필연적인 과정임을 강조한 말이지요. 한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면 우선 한자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부터 밝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것이 진실인가를 밝히는 방법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이 남의 주장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처음 보는 음식이 있는데 누군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남이 그러는데 이 음식은 달다고 하더라.”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논란이 그치지 않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 음식을 맛보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이처럼 진실은 그 자체에 있습니다. 한자(漢字)는 외래어일까요? 진실은 한자 자체에 있습니다.

문자는 왜 생겼을까요? 말의 대용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현재의 사안은 말로하면 그만이지만 앞으로의 일은 허공에서 사라지는 말로는 증거 할 방법이 없습니다. 즉 앞날을 기약하는 약속의 표시로 문자의 필요성이 생긴 것이지요. 무형의 말이 가시적인 실체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가상해 봅시다. 처음에는 나무나 돌에 빗금을 그었습니다. 3일 후에 과일 두 개를 주겠다고 약속을 하는 경우라면 해 모양 그림 옆에 빗금 세 개를 긋고, 과일 모양 그림 옆에 빗금 두 개를 긋습니다. 이제 말이 실존하는 형상으로 변했습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그 무엇이, 말을 가시화한 빗금 모양의 그 무엇인가가 탄생한 것이지요. 이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처음 문자를 만든 사람들은 이것에 어떤 이름 붙였을까요?

계(契)라는 한자가 있습니다. 계(契)는 “맺다, 언약하다, 새기다”라는 뜻글자입니다. 계약(契約)하다라는 단어로 아주 많이 쓰입니다. 애초 이 글자는 아래 큰 대(大)가 없이 윗부분만 있었습니다. 윗부분을 보면 왼쪽에 빗금이 있고 오른쪽에 칼(刀)이 있습니다. 즉 칼로 빗금을 새겼다는 뜻으로 만든 글자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다 새겼을까요? 가장 흔하고 새기기 쉬운 재료는 나무였습니다. 그래서 이 계(契)의 갑골문을 보면 아래가 클 대(大)가 아니라 나무 목(木)입니다. 이것이 오랜 세월을 지나며 옮겨 쓰는 과정에서 목(木)이 대(大)로 바뀌었습니다. ‘큰’ 약속에 쓰인다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더해지며 별 저항 없이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자와 한자가 외래어가 아니라는 주장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바로 계(契)라는 글자의 또 다른 발음이 ‘글’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전에는 이 ‘글’을 부족이름이라고 풀이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들이 만든 문자의 이름입니다. 이 ‘글’이라는 발음은 절운(切韻)이라는 책에 명기되어 있습니다. 절운은 수나라 때 만들어진 한자의 발음책으로 당시까지 존재하는 모든 한자의 발음을 쉬운 한자의 성모와 운모, 절반씩으로 표기한 한자발음사전입니다. 이 책에 계(契)라는 글자 원형의 발음이 기흘절(欺訖切), 즉 ‘ㄱ’과 ‘흘의 아랫부분’의 합, ‘글’이라고 명기되어 있는 것입니다.

‘글’이 무엇입니까? 우리 민족이 우리 글자를 가리키는 말 아닙니까? 우리가 만든 ‘글자’니 ‘글’이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하지요. 우리말에는 ‘글’, ‘글자’ 뿐 아니라 ‘긋다’, ‘그리다’ 등 동일한 어원을 가진 말이 엄연히 살아있습니다. 우리 아닌 다른 민족이 어떤 문자를 만들고 그 이름을 ‘글’이라고 짓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시고 그 이름을 ‘잉글리시’ 나 ‘라틴’이라고 지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습니다. 이처럼 한자를 처음 만든 사람들이 우리 민족의 조상이었다는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바로 한자 그 자체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중국인들은 글자를 문(文)이라고 표기하고 ‘웬’이라고 발음합니다. ‘글’이라는 발음과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하나만 예를 더 들겠습니다. 바로 민족, 나라 이름입니다. 우리 민족의 이름은 한(韓)입니다. 중국은 한(漢)족이지요. 먼저 한(漢)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왼쪽은 물(水-氵물 수)인 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른 쪽은 근(菫 진흙 근)의 변형입니다. 이 글자의 갑골문을 보면 무언가를 불에 굽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 무언가가 짐승이나 새라는 사람도 있고 진흙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자의 쓰임새를 보면 아무래도 진흙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언젠가 다큐멘터리를 통해 아프리카의 어느 척박한 지역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지금도 진흙을 구워 먹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옛날에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진흙을 구워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자가 들어가면 대개 고난을 뜻합니다. 근근(僅僅)히 연명하다, 기근(饑饉) 등 모두 못 먹어 고생하는 상황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한(漢)은 진흙의 다른 측면에서 파생한 글자입니다. 즉 식용 진흙의 무수히 많은 고운 입자에서 ‘많다, 무리’라는 의미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漢)은 나라 이름이기 이전에 은하수 한으로 불렀습니다. 이 글자가 어떻게 중국을 가리키게 되었을까요? 넓은 땅에 수많은 민족이 섞여 사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즉 한(漢)은 수많은 인종, 인구가 모여 사는 나라라는 뜻이 됩니다.

이제 한(韓)을 봅시다. 왼쪽은 숲 사이에 떠오르는 해를 가리킵니다. 오른쪽 위(韋)는 부드러운 가죽이란 의미도 있지만 “에워싸다”라는 뜻으로 만든 글자입니다. 가운데 네모는 땅을, 위아래는 그 땅을 돌며 지키는 왼발, 오른발을 가리킵니다. 곧 한(韓)은 떠오르는 태양이 에워싸고 지켜주는 축복받은 땅을 가리키는 글자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누군가가 두 나라의 이름을 한(漢)과 한(韓)이라고 명명했다면 그 사람은 과연 어느 쪽 사람이었을까요? 자기 땅에는 진흙을 구워먹을 정도로 척박한 땅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글자를 사용해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땅이라는 일차원적인 이름을 붙이고 남의 땅에는 떠오르는 해가 에워싸고 보호하는 땅이라는 고차원적인 이름을 지어 준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밖에도 우리 한(韓)족의 조상이 한자를 만들었음을 증거하는 글자는 수없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 조상들이 모든 한자를 만든 것은 절대 아닙니다. 갑골문을 만든 북방민족이 갈라져 일부는 한반도로 일부는 중국 남방으로 이동한 후 중국 땅에서는 계속 한자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한자의 핵이 되는 글자의 대부분은 한(韓)족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위에 밝힌 바처럼 한자 자체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과거 오랜 동안 힘의 논리에 의해 중국이 한반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한반도에 살던 그 후예들이 어느덧 한자의 뿌리를 잊어버린 것이 바로 오늘날 한자를 외래어 취급하는 현실의 근본이고 진실인 것입니다.

수많은 우리말이 한자를 이용해 만들어졌습니다. 때문에 한자를 외래어로 인식하는 한 우리 말과 글은 불편한 상태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한문은 외래어지만 한자는 결코 외국의 글자가 아닙니다. 우리 조상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바로 우리의 글자입니다. 훈민정음도 처음부터 한자와 병용하도록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글자입니다. 우리는 한자와 한글이라는 가장 뛰어난 표의문자와 표음문자를 만들어 함께 사용하는 세계 유일의 민족임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말에 왜 이토록 한자어가 많은 지 이해가 되고 또 한자교육이 왜 필요한지 피부에 와 닿게 됩니다. 하루 빨리 우리 사회에서 한자가 제 자리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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