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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염치 불고하고|

[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염치 불고하고

동아일보 손진호 기자 2016.05.17


요즘 아이들이 한자를 모르다 보니 우리말을 외국어처럼 외운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하긴 자신의 이름조차 한자로 쓸 줄 모르는 아이들이 많으니 그럴 성싶다. 여러 가지 속뜻을 담고 있는 뜻글자인 한자어는 어른들에게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한자어의 뜻을 지레짐작으로 쓰는 경우가 적잖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쓰는 상투어 ‘염치 불구하고’도 그중 하나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염치(廉恥)’다. 염우(廉隅)라고도 한다. 언중은 발음하기 쉬워선지 염치 뒤에 따르는 동사로 ‘불구(不拘)하다’를 즐겨 쓴다. 불구하다는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염치 불구하고’는 ‘염치 따위는 생각지 않고 제멋대로’란 뜻이 되어 버린다. 의도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뜻이 되어버리니 이상하지 않은가.  

바른 표현은 ‘염치 불고하다’다. ‘불고(不顧)하다’는 ‘돌아보지 아니하다’란 의미이니 ‘염치 불고하고’는 ‘염치를 차리지 못하고’라는 뜻. ‘체면 불구하고’란 말 역시 ‘체면 불고하고’가 옳다. 

‘산증인’과 ‘향년(享年)’도 가려 써야 할 말이다. 산증인은 ‘어떤 분야의 역사 따위를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낱말, 반드시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써야 한다. 부고(訃告) 기사 등에서 가끔 ‘언론계의 산증인’ 식으로 살아생전 업적을 기리는데 얼토당토않다. 이와 반대로 죽은 사람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이 향년이다. 향년은 ‘한평생 살아 누린 나이’란 뜻이니 산 사람에게 쓰면 그런 실례가 없다. 

‘터울’과 ‘역임(歷任)’도 잘못 쓰기 쉽다. 터울은 ‘한 어머니의 먼저 낳은 아이와 다음에 낳은 아이의 나이 차이’다. 그러니 어머니가 같은 형제와 자매, 남매 사이에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이복(異腹) 형제자매에게조차 써선 안 된다. 


누군가 새로운 직위에 오르면 으레 등장하는 낱말이 ‘역임(歷任)’이다. ‘여러 직위를 두루 거쳐 지냈다’는 뜻이다. ‘여러’라는 조건에서 알 수 있듯이 달랑 한 직위를 언급하고는 ‘역임했다’고 하면 안 된다. ‘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로 써야 옳다. 이런 잘못을 애당초 피하는 방법? ‘거쳤다’나 ‘지냈다’ 등으로 쓰면 된다. 부드럽고 무엇보다 뜻이 명확하지 않은가.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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