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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신문은 한글전용, 전문서적은 한자혼용하면 논쟁이 사라질겁니다”|

[책과 삶]“신문은 한글전용, 전문서적은 한자혼용하면 논쟁이 사라질겁니다”
경향신문 황경상 기자  2012.08.03


ㆍ‘한글민주주의’ 최경봉 교수

만약 한글이 없다면 우리말도 존재하기 어려울까? 우리 민족의 정체성도 사라져 버릴까? <한글민주주의>(책과함께)를 내놓은 최경봉 원광대 교수(47)는 한글을 경시하는 듯한 다소 도발적인 답을 내놓는다. “한글이 없던 시절에도 우리 조상들은 우리말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고 고유문화를 영위하고 있었다.”

최 교수는 몽골인들의 사례를 제시한다. 현재 몽골인들의 민족 공동체는 몽골공화국과 중국 내 내몽골자치구로 나뉜다. 두 곳은 언어는 같지만 문자는 다르다. 구소련의 지원으로 성립된 몽골공화국이 러시아어의 키릴 문자를 쓰는 반면 내몽골자치구는 몽골 고유의 전통문자를 사용한다. 그런데 내몽골의 몽골어와 문화는 날로 중국화하는 반면 몽골공화국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반드시 고유문자가 있어야만 말이 유지되고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 지난 1일 만난 최 교수는 “한글이 없으면 우리말이 존재할 수 없고 민족 정체성도 사라진다는 우려만으로 한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리는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많은 사람들이 한글 쓰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혹은 “한글문화가 풍부해진다면 우리말 문화도 더 풍부해진다”는 관점에서 한글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자고 말한다.

“한글이 없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글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말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글과 우리말, 우리 민족의 관계를 너무나 절대적으로 보는 민족주의적 관점이 국어학이나 국어정책론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분명 존재합니다.”

“문자 선택의 정당성은 대중의 수용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으며, 문자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적 원칙”이라는 구절에 이르면 책 제목의 함의, 책 전체에 담긴 논의의 얼개를 눈치챌 수 있다. 최 교수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관습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한 개혁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으며, 어문정책은 대중의 요구를 반영해 발전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1960년대 후반 중국은 한자를 비롯해 소수민족의 언어까지 모두 로마자로 대체하려고 시도했다. 대중이 한자를 배우지 않고도 쉽게 어문생활을 하도록 돕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20년 넘게 추진된 문자개혁은 실패했고 모두 전통으로 되돌아갔다. 간체자 사용만이 유일하게 성공했다. 한글도 마찬가지다. 모아쓰기(한)를 풀어쓰기(ㅎㅏㄴ)로 바꾼 적도 있고, 소리나는 대로 쓴(사람이→사라미) 적도 있었지만 현재까지 이어진 경우는 드물다.

최 교수는 한글전용과 국한혼용의 논쟁도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보자고 말한다. “한글전용론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국한혼용은 한글로 표기했을 때 의미가 불분명한 부분도 있다는 것이죠. 두 주장의 문제는 어느 한쪽을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시작해 전체 어문생활에 적용시키려는 데 있습니다. 읽는 독자들을 고려해 보면 해답은 명확합니다. 신문처럼 많은 사람들이 보는 매체는 한글만 쓰는 것이 좋겠죠. 전문서를 쓸 때는 한자를 혼용해도 좋을 겁니다.”

우리말글 연구에 평생을 바친 주시경 선생 또한 비슷한 글을 ‘황성신문’에 쓸 때는 국한혼용체를 썼지만, ‘서우’라는 잡지에 쓸 때는 한글만으로 썼다. 독자층을 고려해 글쓰기 양식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말 시를 썼던 만해 한용운 또한 <조선불교유신론>에서는 “佛이 言하시되…”처럼 이두문에 가까운 국한혼용체를 썼다.

최 교수는 표준어를 정하고 외래어를 순화할 때도 이것이 ‘바른말’이며 ‘규범’이라는 식으로 접근하기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는 ‘공통어’를 만들자는 입장에서 풀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걸판지다’ ‘어줍잖다’는 안되고 ‘건방지다’ ‘어쭙잖다’만이 표준어로 인정되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단일표준어를 고집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60~70%의 사람들이 쓰는 말을 틀렸다고 스트레스를 주기보다 인정해주는 것이 언어생활을 더 역동적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세계적으로도 단일표준어 원칙은 없습니다. 다만 많이 쓰는 말을 사전에 올릴 뿐이죠. 게다가 이번에 새롭게 표준어로 인정된 말들이 북한에서는 이미 문화어로 쓰이고 있다는 걸 보면, 통일 이후의 표준어 문제를 생각해 보더라도 결국 복수표준어로 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외래어도 마찬가지다. 외래어 배척운동이 가장 극심했던 때가 유신체제였고, 독일에서는 나치 시절이었다는 점을 들어 “극단적인 어문민족주의는 결국 언어를 정치의 문제로 만든다”고 설명한다. 북한도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로 순화했지만 결국 다시 환원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920년대부터 그런 논의가 있었죠. 채만식에게 외래어는 번역할 수 없는 새로운 우리말이었고, 못 쓰게 하면 표현 자체가 불가능 어떤 것이었습니다. 다만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쓰는 것은 안되겠죠. 국민 대부분이 아는 마네킹을 ‘매무새 인형’으로 바꾸는 것은 문제라는 얘깁니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어떤 말이 많이 쓰이는지 빈도를 쉽게 측정할 수 있으니 충분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최 교수는 표기법의 문제는 결국 “원칙과 원리의 문제가 아니라 조정과 타협의 문제”라고 본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좋은 정책이나 제도도 사람들의 수용 여부에 따라서 결정이 되잖아요. 대중을 좇아간다고 걱정할 수 있지만, 좋은 모델이라도 수용이 안되면 고쳐나가면서 대중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측면을 더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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