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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에서 성장한 한자어는 또 다른 ‘우리말’|

우리 땅에서 성장한 한자어는 또 다른 ‘우리말’

세계일보 강상헌 2015.05.24



한자를 설명하는 담론에 으레 등장하는 어휘 중 하나가 ‘설문해자’다. 말씀 설(說), 글월 문(文), 풀 해(解), 글자 자(字) 등으로 구성된 이 말은 설문(說文)과 해자(解字)로 나눠 볼 수도 있고, 설해(說解)와 문자(文字)로 나눠 볼 수도 있다. 사전류로 분류되는 서기 100년쯤의 책 이름이다. 중국 후한(後漢)의 학자 허신(許愼)이 지었다. 한자를 부수(部首)에 따라 분류하여 정리한 가장 오래된 저술이다. 오늘날까지도 이 책이나 저자의 이름 앞에는 흔히 ‘위대한’이라는 꾸밈말이 붙는다.

글[文]을 설명[說]함이 설문이다. 글[字]을 풀어낸[解] 것이 해자다. ‘글’이라고 (여기에) 정의한 문(文)과 자(字)는 같은 것인가? 한국어의 중요한 구성요소이기도 한 한자와 한자어의 그 해법을 이해하고 활용의 방안을 찾는 키워드들이다. 설해(說解)는 해설하고 풀어내는 것, 즉 주석(註釋)이다. 문자(文字)는 한자를 이루는 ‘문’과 ‘자’의 합체다. 



동북아시아의 황하(黃河) 유역에서 3500년 전쯤부터 그림글자가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은(殷)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중국 고대 상(商)왕조 때의 갑골문이다. 주술(呪術)이나 신탁을 위해 점(占)을 쳤다. 거북 배딱지[갑(甲)]나 소 어깨뼈[골(骨)]에 불을 놓고 트거나 갈라지는 모양[균열(龜裂)]으로 점괘를 삼았다. 그 옆에 점괘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기록했다. 사물의 형태와 뜻을 본뜬 그 그림들이 디자인상의 변화와 개혁을 겪으며 간략해지고 상징화하며 소리와 뜻도 품게 됐다. 뜻글자(표의문자)다.

처음 만들어진 그 글자들이 문(文)이다. 갑골문으로 추정해본 文자의 본디는 사람의 가슴을 아름답게, 또는 위엄 있게 치장한 문신(文身·tattoo)이다. 제사를 이끄는 당시 지도자의 상징이었을까? 이 그림(글자)이 ‘글자’의 뜻 文으로 쓰이게 됐다. 한 글자(그림)로 이뤄진 것이어서 독체자(獨體字)라고 부르기도 한다.

文을 둘이나 서넛 모아 다른 글자를 만들었다. 집[면(?)]에서 아이[자(子)]들이 생기듯, 새 글자들이 생겼다. 자(字)는 이리하여 ‘첫 글자들이 만나 이룬 새 글자’가 됐다. 사람[인(?, 人)]이 나무[목(木)]과 만나 쉰다는 휴(休)를 이뤘다. 돈의 뜻 금(金)이 셋 모여 기쁘다는 흠(?), 수레[거, 차(車)]가 모여 시끄럽다는 굉(轟)이 됐다. 합쳐 됐다고 합체자(合體字)라 한다.

우리가 ‘문자’를 글자, 영어 레터(letter)의 뜻으로 아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한자는 한 자 한 자가 글자(letter)이자 한 단어(word)다. 한국어는 ‘문자’가 한 단어다. 이게 한자어다. 중국어에서 ‘문자’는 ‘문’과 ‘자’ 두 단어가 만난 숙어(熟語)다. 새옹지마(塞翁之馬)처럼.

광개토대왕비의 옛적 모습.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전(2011년)에서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 지금은 보호각 안에 비석이 들어앉아 있고, 중국 당국은 접근을 제한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자어를 중국인들은 이해 못하는 경우가 잦다. 우리말 단어(한자어)를 한자, 또는 중국의 현대 한자체인 간체자로 써놓아도 중국 관광객인 유객(遊客·유커)들은 뜻을 모른다. 우린 ‘관광객’이라 하지만 그들은 그 뜻으로 ‘유객’이란 말을 쓴다. 관광객이란 말을 그들은 잘 모른다. 우리 한자어는 이 땅에서 한자를 토대로 자라난 우리말, 한국어인 것이다.

한자의 文과 字가 (독립된) 단어이기 때문에 다른 단어들을 모아 새로운 말(숙어나 단어)을 만드는 것이 자유롭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그들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그들의 말이 만들어졌고, 우리도 그렇게 우리의 말을 만들어왔다. 한국의 관광객(觀光客)과 그들의 유객(遊客)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다. 일본어의 한자어 또한 흡사하다. 물론 3국이 같은 말도 있다.

한자어는 한국어에서 비중이 매우 큰 단어들이다. 이를 우리는 표음문자(表音文字·소리글자)인 한글(훈민정음)로 적기도 하고, 한자를 괄호 속에 넣어 표기하기도 한다. 소리글자로 표기하는 우리말의 뜻을 잘 붙잡고 다양하게 하는 역할을 한자어를 이루는 한자가 해준다. ‘방화’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보자.

불 지르는 放火, 불을 막는 防火, 국산영화 邦畵, 향기로운 꽃 芳花 등은 같은 글자의 여러 ‘방화’들이다. 한자를 일반적으로 쓰던 시기에는 이 말들 말고도 자기나라 화폐 邦貨, 꽃처럼 환한 芳華, 과거시험 급제자 중 젊고 폼 나는 인물 榜花, 꽃구경 訪花 등도 ‘방화’의 여러 뜻이었다. 불 지르는 것과 불을 막는 것이 다 ‘방화’였음을 주목할 필요도 있다.

문과 자에 주석을 단 ‘설문해자’는 전서체(篆書體)를 표제어(설명하고자 한 말)의 대표적인 서체로 썼다. 전서체는 대전(大篆)과 소전(小篆) 등으로 나뉘는데 진시황 때의 승상 이사(李斯)가 지역에 따라 다른 여러 글자체(대전)를 하나로 통일해 소전을 만들었다. 설문해자는 이 전서체 말고도 당시까지의 여러 서체를 함께 제시해 후세의 문자학 연구에 도움을 주었다. 소전(체)을 직선화 간략화한 것이 예서(隸書)체다. 이는 당시의 실용적인 서체로 처음에는 ‘배움 없는 사람들의 글자’로 푸대접을 받기도 했으나 점차 주류 서체가 되고 나아가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의 바탕이 된다. 해서는 지금 우리가 쓰는 한자 서체다. 한자 형태의 대략의 역사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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