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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 칼럼]공교육과 한자|

[미추홀 칼럼]공교육과 한자

경향신문 200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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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2-16 05:00:09수정 : 2009-12-16 05: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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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 경감은 국정주요과제의 하나다. 학원 플래카드에 ‘초등학교 학생 이름과 한자능력시험 3급 합격’이라는 선전문구가 종종 눈에 띈다. 3급은 교육용한자 1800자에 해당하니 대단한 실력이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니 어떻게 보면 이것도 사교육비 증가에 한몫을 한다.

 
     양효성 작가·어문학자

왜 돈을 들여 한자를 가르치는 것일까? 자격증을 취득하면 대학입시와 취업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수업능력도 향상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수능시험 고득점은 모든 학부형과 학생들의 소망이자 가문의 영광인 세상이다. 그 시험문제를 뜯어보면 문제도 답도 또 지문의 핵심어도 모두 한자다. 다만 ‘漢字’가 ‘한자’로 표기되어 있을 뿐이다. 수리영역 10번 문제에 ‘패류는 현탁물을 여과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한자를 아는 학생은 간단히 ‘패류(貝類)는 현탁물(縣濁物)을 여과(濾過)’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이 설명하는 개념을 재빨리 한자로 파악하고 또 기억한다. 야구 감독이 상대 사인을 훤히 알고 경기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데 상대방은 사인을 내도 못 알아보는 선수를 데리고 있다면 또 어떻게 될까? 영어도 고학년이 되면 라틴어에 기원을 둔 추상적 개념들이 기하급수로 증가한다. 과학과 사회과목 모두 그러하다.

한자는 우리 일상 기호의 하나

내년부터 8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는데 한문에 관해서는 ‘범교과적’으로 다룬다고 한다. 즉 모든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로 한문교육을 강화한다는 뜻인데 한자는 우리 것이 아니라는 고정관념과 한자과외를 하지 않은 학생들로 한글세대 선생님들은 다소 곤혹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걱정할 일은 없다. 선생님들은 한 시간에 하나의 개념만 연습해서 훈(訓)과 음(音)을 익히고 설명을 덧붙여 판서하면 된다. 학생들이 날마다 6교시 공부한다면 하루에 6단어 1년이면 적어도 1200단어를 익힐 수 있다. 3년만 하면 이미 배운 한자가 연결되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가는 메커니즘을 익혀 스스로 개념을 정립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비로소 창조적인 능력이 싹을 틔우게 된다. 결코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영어교육에는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이 성과 이름은 한자로 쓰면서도 한자를 쓰면 민족의식이 손상된다는 주체사상(?)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한반도에 한자가 들어온 것은 적어도 2000년이 된다. 한자가 우리 역사와 독자적 사상을 일군 도구의 하나였다면 이는 당연히 우리가 일상 사용하는 의미기호의 하나다. 고유어는 겨우 15%였던 영어가 독일어와 라틴어를 비롯해서 아랍어, 불어까지 들여다가 세계적인 언어로 역수출하고 있다면 우리도 적극적으로 한자를 수용하여 한글과 함께 갈고 닦아야 하지 않을까?

공교육서 한자 교육 외면은 곤란

한자는 214개의 부수가 조합을 이루며 알파벳 구실을 하는 독특한 시각문자다. 시작은 어렵지만 자동차운전을 배워놓은 것처럼 편리한 점이 더 많다. 중국 홍보영화의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장면에 주판을 튀기는 손가락이 오버랩되곤 하는데 초창기에 컴퓨터 대신 그 복잡한 수식을 주판으로 풀었다는 자부심을 과시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맹자>를 배워가며 중국에 접근하는 것은 단순히 국채(國債) 2조 달러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의 사법고시와 같이 작문도 하고 수식도 풀며 3일 동안 대학입시를 치르는 중국과 현대적 학문을 단순 비교하는 것도 무리가 있지만 한문만 쓴다고 과학이 뒤떨어진다는 것은 비약이다.

한자가 ‘양반언어’로 규탄받은 것은 봉건주의시대에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1948년 한글전용법안이 상정되었을 때는 대학졸업자가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였다. 지금 대학이 의무교육이 되다시피 한 현실에 더 이상 한자가 어렵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이런 사정을 알 만한 ‘교육귀족’들은 국가가 어떻게 하든 모두 알아서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서민은 한자를 못 쓰게 의식화하고 규제를 강화해놓고 한자지식특권층이 생겨나는 현실을 공교육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사교육을 부채질하는 공교육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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