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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어휘력과 한자 교육 - 2013. 06. 26|

[만물상] 어휘력과 한자 교육
김태익 논설위원 2013.06.26

어느 중학교 역사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 학생들 중엔 안중근 의사(義士)를 의사(醫師) 선생님으로 아는 애들도 있다." 설마 그럴까 했는데 괜한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며칠 전 한 방송사 리포터가 지나가는 학생에게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학생이 되물었다. "야스쿠니 신사? 신사숙녀 할 때 신사 아니에요?" 일본 전범(戰犯)들 위패를 모아놓은 신사(神社)를 신사(紳士)로 알고 있었다.

▶지난해 고교생 퀴즈 프로그램인 KBS '골든벨'에서 "이비인후과는 어디가 아픈 사람들이 갈까요?"라는 문제가 나왔다. 모두 쉰 문제 중에서 열 번째쯤에 나온 것이었으니까 프로그램 제작진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본 셈이다. 그런데 틀린 학생이 무더기로 나와 탈락했다. 이(耳)가 귀, 비(鼻)가 코, 인후(咽喉)가 목구멍을 뜻한다는 것만 알면 쉽게 맞힐 문제였다.

▶하긴 요즘 아이들만 흉볼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 가분수·대분수, 중학 들어가 교집합·인수분해 같은 수학 용어를 이름에 담긴 뜻도 모른 채 배웠다. 한자로 假分數·帶分數·交集合·因數分解라고 쓴다는 건 어른이 돼서야 알았다.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이 왜 이런 이름인지 한자 뜻풀이를 해 가며 설명해줬더라면 수학에서 그렇게 헤매지는 않았을 것 같다. 과학 시간에 파충류·양서류·갑각류나 화성암·변성암·퇴적암의 뜻과 생김새를 머릿속에 떠올리기는 또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 이름들에 쓰인 한자를 알았다면 훨씬 쉽게 깨칠 수 있었을 것이다.

▶국어사전에 실린 우리말 어휘 가운데 70%가 한자어다.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하는 교과서에서는 한자로 된 단어·용어가 90%나 된다. 한자어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간편한 우리말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어문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한자를 모르는 어린 세대가 한글로만 쓰인 한자 단어투성이 교과서를 배우기란 암호 해독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공부에 재미를 못 붙일 뿐 아니라 아예 이해를 못 하는 일이 벌어진다. 국어 과목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올가을 학기부터 초·중학교에서 교과서 어휘를 중심으로 한자 교육을 하기로 했다. 우선 희망하는 학생을 모아 방과 후 국어·수학·과학·사회 교과서 속 한자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어휘력 없이 공부하는 것은 벽돌 없이 집을 짓거나 총알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다. 한자 교육이 학교 정규 과목이 돼야겠지만 당장 그럴 수 없다면 이렇게라도 첫걸음을 떼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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