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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표지판, 한자 병기를 - 인천일보 2013.08.27.|

도로표지판, 한자 병기를
심재갑 길영희선생기념사업회 고문
(인천일보 2013.08.27.)

지난 1984년 봄방학 때 제주도를 찾았는데, 거리를 둘러보니 모든 도로의 표지판이 한글이었다. 필자는 40여년간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정부의 한글전용정책 잘못과 폐해를 지적하고 있었다.

한자는 2500년간 사용해온 우리의 글이다. 외국어가 아닌 우리의 국자다. 표의문자인 한자와 표음문자인 한글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우리 문자생활을 구성했다. 그래서 이를 같이 사용한다면 그 효과는 세계에서 유례 없는 수준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학수능시험에서 한자를 없애니 학생들은 상용한자 1800자조차 공부하지 않게 됐고, 한자문맹의 처지로 전락했다. 그래서 자라나는 세대와는 말이 잘 안 통하는 상황이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학생들에게 어용학자(御用學者)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어영부영하는 학자라 답하고, 일제가 취한 동화정책(同化政策)에 대해 얘기했더니 안델센 동화냐, 이솝 동화냐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대학 신입생들에게 자기 성명을 한자로 쓰라 했더니 못 쓰는 학생이 3분의 일이고, 심지어 이(李)씨를 계(季)씨로, 공(孔)씨를 홍(弘)씨로 쓴다고 한다.

해방 후 우리 어문정책은 수시로 바뀌었다. 국한문혼용이다. 한글 전용이라 해서 학생들을 괴롭혔다. 괄호 쓰기도 한자를 먼저 쓰고 괄호 안에 한글을 써야 할 터인데, 괄호 안에 한자를 쓰니 한글만 읽고 한자는 읽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온 국민이 나서 학교폭력을 염려하는 상황에서도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한자를 배우고 윤리도덕과 고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힘을 얻지 못했다.

알다시피 우리말의 70% 이상은 한자에서 비롯됐다. 학술용어는 대부분 한자여서 한자를 모르면 우리의 귀중한 옛 문헌을 탐독할 수 없다. 이러한 실정이니 학생들이 한없이 불쌍하게 보이고 기성세대로서 책임감은 더욱 커진다. 언제까지 이 참담한 교육현실을 좌시하고 있어야 하나.

그래서 필자는 제주도 방문 후 도지사와 제주관광공사 사장에게 편지를 썼다. 요지는 제주도는 앞으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로부터 많은 관광객을 맞이할 것인데, 그래서 도로는 한자를 병기하는 표지판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교육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는 학생들의 한자능력에 대한 것 등이었다. 그랬더니 곧바로 제주도지사와 관광공사 사장에게 공문이 왔다. 내용은 필자가 보낸 장문의 편지에 감동을 받았다면서 즉시 필자 의견을 실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공문을 받은 그 해 필자는 다시 여름방학을 이용해 제주도를 방문했는데, 도로를 살피다가 깜짝 놀랐다. 일대 도로표지판에 한자를 병기하는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감격에 겨웠던 필자는 돌아온 즉시 감사의 뜻을 표하는 편지를 보냈다.

제주도는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이라 불렸다.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수많은 조정의 중신들이 귀양을 갔던 곳으로 이들이 그 곳에서 선비정신을 뿌리내리 게 하는 데 기여했다. 제주도민들은 남달리 순박하고 인심도 후하다. 또 숭조사상(崇祖思想)이 남달라서 제주도에는 추석 때 조상의 산소벌초를 위해 벌초휴가도 있다.

필자는 직접 이런 제주도민들의 따뜻한 민심을 경험한 사람이기도 하다. 62년 전인 지난 1951년 1월4일부터 6월21일까지 국민방위군 일원으로 제주도에서 종군했다. 그때 전국 65개 교육대에서 10만여명의 젊은이가 굶주림과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제주도의 제1교육대에서 그 희생이 제일 적었다. 제주도민들의 도움과 각별한 민심, 그리고 선비의 고장 분위기 덕분이었던 것이다.

제주도의 도로표지판 쾌거에 용기를 얻은 나는 청와대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장, 그리고 구청장에 이르기까지 같은 내용의 건의를 시작했다. 한자문맹이 초래할 결과를 알기에 이후 거의 30년간 도로표지판 한자병기(漢字倂記)를 간청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 결 같이 반향 없는 마이동풍이었다.

이어 이런 제주도지사 업적을 한글 전용의 폐해를 우려하고 있던 임원택 교수(서울대 경제학과)께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가까운 후배인 당시 서울시장에게 찾아가 직접 말을 했다며 도로표지판 한자병기 확약을 받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아무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다. 임 교수는 이후에도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찾아가 표지판 얘기를 했다.

인천에서는 내년에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아시아는 한자를 쓰는 인구가 30억명에 달하는 국가로 구성된 곳이다. 한자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들이 대거 찾을 인천의 도로표지판은 당연히 한자를 포함해야 한다.

얼마 전 제주도 학생들의 수능성적에 관한 기사를 접했는데, 평균성적이 전국 1위라고 해서 서울 학생들이 제주도로 이사를 간다는 내용이었다. 도로표지판의 한자를 매일 읽게 되는 제주도 학생들은 당연히 한자실력도 전국 1위이리라. 지금도 필자는 1980년대 중반 제주도 지사였던 최재영 · 장병구 지사와 제주관광공사 변동석 사장의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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