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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말일파초회 고간찰 연구 18년 / 유홍준|

 

[특별기고] 말일파초회 고간찰 연구 18년 / 유홍준

한겨레신문 유홍준 2016.04.28


나는 한글전용론자이다. 글쟁이로 살면서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항시 고민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한글전용과 한자교육은 별개 사항이다. 한글전용을 할수록 한자 교육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경험이고 내 생각이다. 한자를 알면 우리가 쓰고 있는 단어의 의미와 유래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내 직함이 석좌교수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정년퇴임한 몸이지만 평생 학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해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다니는 수업이 셋 있다. 모두 ‘그놈의’ 한문 공부다. 둘째 일요일에는 손예철 교수의 <사기> 강독을 듣는 ‘고전강독회’에 나가고, 둘째 목요일에는 김병기 교수에게 한시를 배우는 ‘이목회’가 있으며, 마지막 일요일에는 초서를 공부하는 ‘말일파초회’에 나간다.

내가 한문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1981년,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대학 졸업장을 받으면서 이제 맘먹고 한국미술사를 공부해보겠노라고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입학했는데 전공을 조선시대 서화사로 삼으니 한문을 모르면 연구에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도 논문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친김에 청명 임창순 선생님의 지곡서당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입학 나이가 28살로 제한되어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생물학적으로 그 나이(나중엔 26살) 넘으면 외우는 것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시 지곡서당 교수이며 절친한 벗이자 평생 나의 한문 선생으로 된 이광호의 집에서 <통감절요>를 읽는 모임을 조직하여 매주 일요일마다 배우기 시작했다. 이 모임이 10년 지나면서 격주로 되었고, 또 10년이 지나면서 월 1회로 되었다. 그것이 지금의 ‘고전강독회’이다.

그리고 또 내 나이 사십을 넘겨 추사 김정희를 연구하겠다고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였는데 이번에는 초서가 문제였다. 초서를 모르면 추사의 그 멋진 편지를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초서만 나오면 무조건 이광호에게 달려갔다. 더 어려운 것이 있으면 지곡서당으로 청명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한번 여쭈려면 바둑을 세 판은 두어야 했다. 그래서 지곡서당에서 자고 오는 일이 많았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 그러셨는지 청명 선생님은 초서로 쓰인 사료를 판독할 사람이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초서 강좌를 개설하시고 다른 강좌는 모두 후학들에게 물려주셨을 때도 초서만은 직접 강의하셨다. 때문에 나중에 지곡서당에 들어온 후배들은 일찍부터 초서를 배울 수 있었다.

그러던 1999년 3월, 나는 지곡서당에 갔다가 이광호, 김종진과 초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청명 선생님이 돌아가시면 모르는 글자가 나와도 여쭈어볼 곳조차 없어지니 이러다 맥이 끊어지겠다고 한숨을 지었다. 그때 우리는 초서를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고 모르는 것이 나오면 선생님께 여쭈어보면서 실력을 쌓아가자고 뜻을 모았다. 그리하여 4월부터 나의 옥탑방 공부방에 모여 초서를 공부하기로 결의하고 “매월 마지막 일요일에 초서를 격파하기 위해 모인다”는 뜻으로 ‘말일파초회’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사실을 이광호가 청명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너희들이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냐”고 기뻐하시면서 청명문화재단을 통해 지원금으로 100만원을 주셨다. 그때 짜장면 값이 2천원이었으므로 회원들이 공부 끝나고 먹는 점심값 1년치는 되었다.

그리하여 1999년 4월 마지막 일요일에 첫 모임을 갖기로 하였는데 그만 4월12일, 청명 선생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로서는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선생님께 격려금까지 받은 마당에 어쩔 수 없었다. 이건 운명적인 모임이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주신 100만원이 우리를 묶어놓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예정대로 말일파초회의 초서 공부는 시작됐다. 강독 교재는 처음엔 청명 선생님이 강의하시며 탈초와 번역까지 남기신 <근묵>(槿墨)을 복습 삼아 다시 읽었고 이후부터는 미술애호가가 소장한 간찰첩을 읽었다. 같은 교재를 함께 읽으니 회원들의 초서 실력 차가 확연히 드러났다.

진돗개가 우리 속에 있다가 사냥을 한 번 나갔다 오면 서열이 1번부터 꼴찌까지 생긴다고 하는데 후배인 임재완과 김경숙이 상고수였고 김종진 이광호가 그 뒤를 잇고 나는 맨 뒤에서 따라가기 바빴다. 그때 우리들은 후배가 선배보다 더 잘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래야 대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글자 자체는 후배가 잘 읽어낸다 해도 문맥을 잡아주는 것은 역시 선배였다. 그것이 한문이다.

말일파초회 회원은 현재 18명으로 모두 역사 국문학 동양철학 불교학 미술사 서예 고문서 전공자로 대학과 국학관계 기관의 교수이거나 연구원들이다. 이렇게 18년간 함께 공부했지만 오직 미리 탈초해서 단상 앞에 나가 1년, 2년간 발표한 김병기, 김채식, 최원경, 오세운, 김현영, 김병애 등만이 9단이 되어 내려왔다. 한문도 바둑과 마찬가지로 실전을 해야 늘지 관전만 해서는 늘 그 상태로 머문다. 내 평생의 소원 중 하나가 말일파초회 강단에 올라 발표해보는 것이다.

그림과 글씨가 전공인 나는 백하 윤순, 원교 이광사 같은 서예가의 편지나 시전지라는 꽃편지지가 나오면 그제야 논의에 끼어들었다. 그런 중 한 편지에서는 아무도 읽어내지 못하는 두 글자가 나왔다. 석어(石魚, 조기)와 무엇무엇을 보낸다는 것인데 족보에 없는 글씨였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건 ‘갈치’를 한글로 쓴 것이라고 해서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간찰은 옛사람의 생각과 처지를 생생히 전하고 있어 무척 유익하고 재미있다. 퇴계와 기고봉이 논쟁한 것, 성호 이익이 안정복에게 보낸 간찰 같은 것은 학문과 사상의 피력이며 추사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첫머리에서 “어제는 오늘과 비슷한데 왜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느껴지나요. 다름 아니오라…” 하는 구절은 그 자체가 시다.

간찰의 사연들을 보면 인사 청탁, 억울한 하소연, 외직으로 나간다는 이별의 편지 등등이 있고 편지란 본래 일상의 기별이기 때문에 대개는 초상을 위로하거나 보내준 물품을 숫자대로 잘 받았다는 회신이 많다. 개중에는 비밀사항을 별지에 썼으니 읽은 다음 태워버리라고 한 간찰도 있어 그 사연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아주 예외적이지만 기생 옥화가 서울 오면 잘해준다고 해서 왔는데 한 달이 다 가도록 얼굴도 볼 수 없어 가겠노라며 시 한 수를 곁들여 김 판서에게 보낸 애절한 간찰도 있다.

그동안 우리가 읽은 교재들은 ‘초서 독해 시리즈’로 다운샘 출판사에서 이미 4권이 나왔고 두 권이 교열 중에 있다. 책 출간에는 아모레미술관, 일암관, 청관재 등의 지원을 받아왔다. 근래엔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회원으로 들어와 기금 마련에 큰 도움이 되어 이참에 말일파초회가 국학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영구히 이어갈 수 있도록 ‘사단법인 한국고간찰연구회’로 정부에 등록하기로 하여 2013년에 정식 인가를 받았다. 내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이는 나의 가장 명예로운, 그리고 가장 부끄러운 직함이다.

요즘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문제를 놓고 또 찬반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나는 한글전용론자이다. 글쟁이로 살면서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항시 고민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한글전용과 한자교육은 별개 사항이다. 한글전용을 할수록 한자 교육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경험이고 내 생각이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한자를 알면 우리가 쓰고 있는 단어의 의미와 유래를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중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쳐야 하고 대학에서 한문을 교양필수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외워서 익힐 것은 어려서부터 해야 한다. 26살이 넘으면 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그러지 않으면 나처럼 ‘그놈의’ 한문 공부 때문에 평생 학생으로 살게 된다. 이것이 요즘 말하는 인문학의 기초체력을 기르는 길이기도 하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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