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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교육의 당위성(當爲性)|

한자교육의 당위성(當爲性)

충청일보 정현숙 열화당 책발물관 학예연구실장 2014.12.04



우리의 면전(面前)에서 한자가 사라지고 있다.

어디에서도 한자 자체(自體)를 구경할 수 없다. 필자는 최근 연구차 전국으로 답사를 다니고 있다. 어느 날 문득 고속도로의 모든 표지판에서 한자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참으로 황당했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한글 밑에 영어만 표기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억 속의 표지판에는 한자가 있었는데 그 자리를 영어가 차지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한자를 접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한글에는 의미가 없으나 한자에는 의미가 살아있다. 보통 한자를 단순히 중국의 문자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문자다. 그것을 읽는 방법이 한·중·일에 따라 다를 뿐 그 의미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그러기에 삼국간에는 필담(筆談)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국어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로 구성돼 있다.

그것을 한글로만 표기하면 뜻을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한글은 표음문자(表音文字)이고, 한자는 표의문자(表意文字)이기 때문이다. 일본어처럼 우리글에는 동음이의(同音異義)가 많아 한글로만 표기하면 의미를 오해할 소지가 많다.

한자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국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우리 세계'라 할 경우 세계가 '世界'인가 '世系'인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한자로 표기된 동네 이름에는 그 마을의 역사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서양식 방식인 도로명 표기로 주소가 바뀐 후 마을의 역사가 사라졌다. 청와대 부근에 팔판동이 있다.

여덟 판서(判書)가 나온 동네라고 해서 '八判洞'이라 명명했다. 그런데 한글 팔판동에서 그런 의미를 짐작인들 할 수 있겠는가. 그마저도 도로명으로 바뀌었으니 뿌리가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필자의 근무처에서 열리는 현재 전시는 한 출판사의 60년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1950년대의 서명(書名)과 필자명은 대부분 한자로 표기돼 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2000년대에 이르면 대부분 한글로 표기돼 있다. 심지어 전문서적조차 그러하여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서명도 많다. 그 자체보다 더 씁쓸한 것은 한글로 표기해야 하는 이유다.

출판사의 서고(書庫) 직원은 물론이고 서점(書店) 직원들조차 서명으로는 책을 찾지 못한단다.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표지의 색깔과 디자인을 알고서야 책을 찾아준단다. 오십 년간의 한글전용 정책이 국민을 까막눈으로 만들어 버렸다. 언뜻 보면 한글학파의 승리인 듯 보이나 국가 어문정책의 실패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혹자(或者)는 한자는 전문인들만 알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자를 알면 눈이 밝아지고 눈이 밝아지면 세상이 환하게 보인다. 물론 난이도가 높은 한자까지 전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실생활에 필요한 1000자, 그것이 많으면 500자 정도라도 익혀야 한다. 일국(一國)의 어문정책은 국가의 소신과 철학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이 틀렸다면 개인적으로라도 올바른 방법을 취해야 한다.

새해에는 나부터, 그리고 내 아이에게 한자를 가르치자. 한자는 학생들의 학습효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자 교육의 당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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