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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국어기본법|

[설왕설래] 국어기본법

세계일보 강호원 2016.05.12


훈민정음이 반포된 것은 세종 28년 때다. 570년 전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아니할새, 이런 까닭에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할 이 많으니라.” 그때 문맹률은? 십중팔구는 까막눈이었을 터다. 무지렁이 백성도 글을 알게 하고자 한 세종. 우민(愚民)의 틀을 깨고자 했다. 세종 임금이 대왕으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경서(經書)를 줄줄 꿴 조선 사대부들. 대왕의 뜻을 알기나 했을까. 훈민정음을 규방의 여인이나 쓰는 글이라며 암글이라고 불렀다.

 

세종을 도운 집현전 학자들도 그랬을까. 신숙주와 성삼문. 두 사람 모두 사역원 제조를 지냈다. 사역원은 통·번역을 담당한 관서다. 두 사람은 사역원에서 우리말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사대주의 때문일까. 아니다. 한문이나 어물어물 외워 무슨 교린(交隣)을 하겠느냐는 생각에서다. 중국어 교재인 노걸대박통사도 달달 외우도록 했다. 중국어와 다른 한문, 또 다른 우리말. 신숙주와 성삼문은 그 이치를 꿰뚫어 봤을 듯하다. 그것이 한글 창제의 또 하나의 힘이 아니었을까.

 

한글만을 우리 고유 문자로 규정한 국어기본법이 헌재 심판대에 오른다고 한다. 이 법이 제정된 지 11년 만이다.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말과 같은 계통인 일본어. 가나를 쓰기 시작한 뒤 한자·가나 병기를 두고 논란을 벌인 적이 한 번도 없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논란이 벌어지는 걸까. 외침(外侵)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일까. 묘한 일이다.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우리말의 60% 정도는 한자어다. 과거 사전을 기준으로 하면 80%까지 높아진다고 한다. 훈민. 이 말을 두고 사람을 가르친다는 뜻이라고 일일이 외도록 해야 하나. 국어사전 표제어에는 왜 훈민(訓民)’이라고 한자를 병기하는가. 한글만 사용해야 한다면 訓民두 한자는 사전에서도 지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한자를 모르고 한자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더 큰일이 있다. 한문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역사 사료들. 민족사의 사실(史實)이 곳곳에 녹아 있는 중국 ‘25()’는 고사하고 조선왕조실록조차 모두 번역하지 못했다. 수많은 한문 사료는 방치되어 있다. “한자를 가르치지 말자고 하니 스스로 까막눈이 되겠다는 것인가. 스스로 역사를 단절시키는 한글의 사화(史禍)’는 일어나지 않을까. 한자의 기원을 이루는 은허(殷墟)의 갑골문자. 그 은나라는 동이족의 나라라고 하지 않던가. 수천년 이어온 우리 문화의 뿌리를 법률로써 그렇게 뿌리뽑아야 하나.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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