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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훈민정음’은 한자의 토착화를 위해 창제됐다|

[기고]‘훈민정음’은 한자의 토착화를 위해 창제됐다

경향신문 부산대 중문학과 교수 김세환 2015.05.07.




훈민정음(이하 정음)의 서문에 “우리의 말이 중국어와 달라서 중국의 문자를 우리의 말에 사용할 수가 없다(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라 했는데, 당시의 최만리도 그러했지만 사람들은 이 간단한 말에 담긴 상황을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이는 당시 극도로 불편했던 우리의 언어생활을 나타낸 말이었다. 중국의 예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에 도움이 된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집권을 하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한 정책이 중국어의 표준화였다. 베이징(北京)과 광둥(廣東) 사람이 만나면 단 한마디도 통하지 않던 시절, 국민당 정부에 중국 전역으로 쫓겨 다니면서 전쟁을 했던 마오쩌둥에게 언어의 불통은 넘기 어려운 또 다른 장애였다. 자신의 휘하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장병들이 서로 다른 사투리를 쓰다보니 명령도 전달이 안되었다.

표준화는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우선 한자의 독음(讀音)을 표기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한어병음방안(漢語倂音方案)’이다. 즉 영어의 알파벳으로 한자의 독음을 표기하는 방법이다. 이어서 당시 수도였던 베이징을 중심으로 하는 베이징어를 표준어로 지정했다. 이로써 통일된 한자의 독음을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었다. 불과 수십년 만에 현재 중국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전국에서 통일된 표준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말을 문자(漢字)로 적을 수가 없었고, 문자에 대한 통일된 독음도 없었다. 중국 문자는 태생적으로 중국어를 적기 위한 문자였기 때문에 우리말과는 어울려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말에는 이미 1000년이 넘도록 유입된 한자어가 혼용되고 있었지만, 이러한 어휘가 섞인 말은 거의 통하지 않았다. 대왕도 “우민(愚民)이 말을 하려 해도 그 뜻을 나타낼 수가 없다”고 했는데, ‘愚民’이란 백성이 어리석었다는 뜻이 아니고, 나라가 백성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해주지 못해 백성이 무지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정인지(鄭麟趾)는 비록 우리가 이두(吏讀)를 만들어 쓰기는 했지만 이를 말로 하면 만에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 했다.

정음은 한자의 바른 음(正音)을 백성들에게 가르쳐서(訓民) 국어의 표준화와 함께 서로 소통하는 언어생활을 하자는 목적으로 창제한 것이다. 이어 정음으로 한자의 독음을 표기한 <동국정운(東國正韻)>을 간행했다. 이로부터 우리의 한자음이 정해졌고 지금까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모두 표준화된 독음을 사용하게 되었다. 중국보다 600년의 세월을 앞선 것이었다. 세종대왕과 당시 학자들이 8년에 걸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수천년 중국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왕의 탁월한 식견과 소신이었다.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는 조어력이 무궁무진하고, 표음문자(表音文字)인 정음은 무한한 표음의 기능을 한다. 이들 두 문자의 혼용은 그 기능을 극대화한다. 훈민정음은 그 가치로 볼 때 단연 국보 제1호다. ‘언문(諺文)’이란 훈민정음을 비하한 말이 아니고, 한자가 당시의 문자였기 때문에 이와 구별하기 위해 입말 문자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후 1957년 소련을 방문해 모스크바 대학에서 수천명의 중국 유학생들을 격려하는 연설을 했다. 그가 “세계는 당신들의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지만 사투리(湖南語)의 ‘세계’를 알아듣지 못한 학생들은 눈만 멀뚱거렸다. 그가 손으로 지구를 그리면서 영어로 ‘world’라 외쳤다. 그때서야 학생들이 박수를 쳤다. 우리는 세종대왕 이래로 이런 일은 없었다.

우리는 세계의 문명을 공유한다. 원산지와 상관없이 2000년 넘게 사용해온 한자는 분명 우리의 문자이다. 대왕의 본의도 모르고 우리의 역사를 덮은 채 한자를 가르치면 안된다는 억지를 보면 그저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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