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를 읽고]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교육 효과 크다
조선일보 김정희 카이스트팀장 2015.05.29
'한자 병기, 글 읽기를 방해한다'(5월 19일 A29면)를 읽고 반대 의견을 밝힌다. 기고자는 한글 전용 교과서로 공부해도 학생들이 문장 뜻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고 신문이나 인터넷에 한자가 적혀 있지 않아도 뜻을 파악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했다. 한글로 쓴 문장을 보고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자를 알면 더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그 선수는 국내 경기에서 5연패를 한 후 은퇴했다'는 문장을 보자. 이 선수는 명예롭게 은퇴한 것일까, 불명예스럽게 은퇴한 것일까? 연패가 '連覇'인지 '連敗'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이 될 것이다.
또 기고자는 '선물(先物)'을 예로 들면서 문장의 흐름에서 '선물'의 뜻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정작 기고자 자신은 친구에게서 설명을 듣고서야 그 뜻을 알 수 있었다고 모순된 이야기를 했다. 기고자가 증권 회사에서 '膳物'을 취급하느냐고 물어보는 실수를 한 것은 바로 한글 표기만 보아서는 낱말의 뜻을 잘 구별할 수 없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만약 '先物'이라고 쓴 것을 보았다면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사장이 선물을 통 크게 샀다'는 문장을 기고자가 어떻게 해석할지도 궁금하다. 李씨 성을 가진 증권회사 社長이 사업의 일환으로 先物을 산 것인지, 理事長이 거래처용 膳物을 산 것인지 구분이 가능한가? 파충류의 예를 들었는데, 초등학교용 한자로 쓰이지 않는 '爬'를 예로 든 것은 적절하지 않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한자를 병기한다면 4년간 500자, 즉 1년에 100자 남짓의 한자를 배우는 것이므로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학교'와 병기된 '學校'를 본 학생은 '學生'이나 '學年, 學習, 學級, 放學' 등을 보았을 때 낱말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한자가 다른 낱말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다양한 쓰임새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효율적인 길을 놔두고 굳이 먼 길로 돌아가겠다는 이유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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