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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한글한자병용 진두지휘 나선 `보수정치 산 역사` 이한동 前 국무총리   |

[매경이 만난 사람] 한글한자병용 진두지휘 나선 `보수정치 산 역사` 이한동 前 국무총리

지금 정치권의 포용력 80년대보다 못하다


매일경제 201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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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지금 돌아보면 무상할 따름이지. 하지만 분명한 건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거요."

현역 정치인 시절 일명 `단칼(一刀) 선생`으로 불리던 이한동 전 국무총리. 6ㆍ29선언 이후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던 6공시절 내무부 장관을 맡아 풍산금속과 현대중공업 노조 파업을 `단칼에` 진압한 것이 인상 깊었다.

5공 때 정계에 입문한 데다 두드러지게 남성적이고 호방한 인상 탓(?)에 종종 육사 출신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인상처럼 통 크고 정 많아 따르는 사람도 많았지만, 인상과 달리 지나치게 신중해 정작 중요한 고비에는 단칼로 결단을 못 내렸다. 1997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의 이른바 `9룡`으로 꼽히면서 그의 주변엔 항상 `중부권 대망론`이 맴돌았고 실제로 2002년 신당 하나로국민연합 대선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그의 화려한 정치 이력 중 백미는 5공과 6공, 문민정부까지 집권당 원내총무를 3번 역임한 것이다. 여야를 떠나 인간관계가 원만했고 추진력이 탁월했기에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마다 그를 찾았다.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던 그의 정치 철학을 기려 `이한동 총무학`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여당 총무는 야당 총무와는 심리적 중압감과 업무 강도가 한참 다르지. 야당은 반대할 권리를 행사하고 나면 시간을 벌 수 있는데, 여당 총무는 정해진 시간 안에 성과를 도출해내야만 하거든. 5공 당시 민정당 총무를 하면서 1987년 헌법특위에서 지금의 헌법인 제9차 헌법 개정 합의를 도출했고, 6공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 증언과 정호용 씨 퇴진 등 5공 청산을 위한 5ㆍ6공 세력 간, 여야 간 물밑 타협과 3당 합당 과정을 조율해야 했지. 문민정부 시절에도 통합공직선거법을 제정한 정치개혁특위 합의를 이끌어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일을 어떻게 해낼 수 있었는지 몰라. 얘기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거요."

어느덧 팔순에 이른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목소리가 우렁차고 발음이 또렷했다. 파안대소하는 모습엔 전성기의 포스가 남아 있었다. 폭탄주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유명하지만 골프 실력도 수준급이었던 그는 지금도 한 달에 두세 번 필드에 나가고 잘 맞을 때는 드라이버샷이 200야드까지 날아간다고 했다.

그에게 지금 세월호 정국과 함께 교착된 정치 현실은 어떤 소회를 줄까. "한마디로 그때 같은 낭만이 사라졌어요. 양보하고 타협하는 지혜도 없어진 것 같고. 당시 야당의 카운터파트로 늘 으르렁거리던 김태식, 신기하 전 총무 모두 사석에서는 나와 호형호제했지. 야당의 강단과 기개를 보일 때는 보이다가 필요할 때는 기대 이상 통 크게 양보도 해줬어. 그만큼 당에서 신임을 받았고 발언권 있는 사람들이라서 가능한 일이긴 했지. 지금의 정치는 투명해졌다는 것 빼고는 전체적으로 그때보다 뒷걸음질치고 있다고 봐요."

그가 진단하는 정치 퇴행의 원인이 무엇인지 물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 무엇보다 그때 같은 여유라고 할까, 다른 사람을 포용할 아량이 없어진 것만은 분명해. 그때는 저마다 좌우명 삼는 사자성어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잖아. 나도 해불양수(海不讓水)를 좌우명 삼았지. 바다는 흘러드는 어떤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대양을 이룬다는 뜻이요. 정치에서 포용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大道無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천애인(敬天愛人), 김종필 전 총재의 상선여수(上善如水) 같은 좌우명도 그분들의 정치 스타일과 함께 많이 회자됐잖아요. 한글전용론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한자 사용이 퇴조한 것도 정치를 성마르게 만든 원인이 아닌가 싶어. 언어의 한계가 인식과 사고의 한계니까."

사실 애초 이 전 총리와의 인터뷰는 고금의 정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한글과 한자 병용을 위한 그의 어문정책 개혁 소신을 밝히기 위해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이었다. 이 전 총리는 한글한자병용론을 주장하는 각계 인사들이 2012년 7월 출범시킨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 회장이다.

기자는 처음에 그가 한자병용론자들을 명목상 대표하는 `얼굴 마담` 격일 것으로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1948년 제정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을 계승해 2005년 제정된 국어기본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출하고 진두지휘하는 명실상부한 좌장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한자병용론을 신념으로 지켜왔다. 6공 원내총무 때 한문 고전의 수집과 정리, 번역을 맡는 한국고전번역원 설립의 산파 역을 맡았다. 그의 힘으로 정책 입안과 예산 확보가 이뤄져 교육부 산하 학술연구기관으로 2007년 출범했다. 그만큼 그의 한문과 고전 사랑은 각별하다.

"지금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자는 중국 은나라 때 틀을 갖췄고 은나라의 주류는 우리 선조인 동이족이었지요. 한자는 동이족만 아니라 한자 문화권 여러 나라 문자들이 섞여들어가 형성된 문자야. 한자를 중국 문자로만 규정하고 배척하면 우리 고유 문화유산을 스스로 버리자는 거지."

그는 한글전용론과 한자병용론의 근거와 연원에 대해서도 법률가 출신답게 조목조목 꿰고 있었다. "한글전용론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일제 침략이라는 우리의 아픈 역사 탓이죠. 일제의 언어말살정책에 저항하기 위해 우리말 보존은 독립운동의 중요한 과제가 됐고 광복 이후 한글전용정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 중국, 일본과도 어깨를 견줄 만큼 국가 위상이 높아졌으니 아픈 역사가 남긴 굴절된 인식에서 벗어나 한자도 한글과 같은 우리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지요."

이제부터라도 순우리말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노력이 더 중요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정리된 답변이 거침없이 나왔다.

"표준국어대사전의 51만 표제어 중 순우리말은 25%이고 65%가 한자어의 한글 표기지요. 한자와 우리말이 섞인 단어까지 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80% 가까이는 한자에서 온 거야.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한 단어들은 말 그대로 한자의 발음기호에 불과해. 그런데 단어가 원래 어떻게 생성됐는지 발음 안의 의미가 뭔지 모르고 어떻게 그 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겠어요. 한글전용정책은 사실 우리말을 훼손하는 정책인 거지. 한글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단어의 어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한자를 알아야 해요. 이게 정말 중요한 건 교육의 문제이기 때문이야. 언어의 활용이 제한되면 사고도 제한된다는 거지."

화제를 다시 현실 정치 이야기로 돌리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문정책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은 듯했다. `대통령 빼고 다 해 본` 노정객이 여생의 목표를 찾은 듯 그의 말에서 진한 열정이 배어나왔다. 어렵사리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평가를 끌어낼 수 있었다.

"여당을 위해서나 야당을 위해서나 문희상이가 잘해줘야 할 텐데, 잘할 수 있겠지. 허허."

같은 경기도 출신으로 경복고와 서울법대 후배이기도 한 문 비대위원장에 대해서는 애정과 기대가 남다른 듯했다.

"그 사람한테 한 가지 조언하고 싶은 건 힘들더라도 짊어질 때는 확실히 짊어질 줄 알아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당원들도 국민도 따라오는 거지. 정치하면서 난 궁하면 통한다, `궁즉통(窮則通)`이라는 말을 믿게 됐어요. 밤잠 안 자면서 궁리하고 또 궁리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돌파할 수 있는 지혜가 나옵디다. 나보다는 당이 중요하고 당보다는 국가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확실히 갖고 있어야 해.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것만 명심하면 길이 열릴 겁니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니까."

5·6共·문민정부 거쳐 與 총무 3번 `진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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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동 전 총리는 1934년 경기도 포천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제시대에 보통소학교를 졸업했다. 가난 탓에 경복중ㆍ고등학교와 서울법대를 다니는 내내 입주 가정교사를 했고 생계를 위해 직접 닭을 키우기도 했다.

1958년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 1차에 응시하고 바로 육군 사병으로 입대한 뒤 신문을 보고 합격 사실을 알게 됐다. 훈련병 신분으로 치른 2차 구술시험을 통과해 이등병에서 하루아침에 중위로 진급하는 롤러코스터를 체험했다. 포천 출신 고시 합격 1호이기도 하다. 판사로 출발했으나 검사로 진로를 바꿔 검사장 승진 길목에 섰던 5공 당시 민정당 공천으로 11대 국회에 진출해 내리 6선을 했다. 정권 3대를 거치며 연속 원내총무로 기용될 만큼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면서 내무부 장관과 여당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국회부의장 등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당 3역에 기용된 것만 6차례였다. 1997년 대선 당시 9룡이 각축하던 신한국당 예비경선에서 이회창 총재, 이인제 상임고문에 이어 3위를 기록해 결선투표 진출이 좌절됐다. 당내 입지가 약화된 그는 2000년 김종필 전 총재(JP)와 손잡고 자민련에 입당해 총재를 거쳐 DJP 연합정권인 김대중정부에서 자민련 몫의 국무총리를 지냈다.

DJP 공조가 와해되자 당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총리직에 잔류해 JP와 소원한 사이가 됐으나 지난해 JP 재평가를 기치로 내건 운정회 회장을 맡으면서 공식적인 관계 회복을 선언했다. 그의 정치 역정은 명암과 공과를 떠나 `한국 보수정치의 산역사`라 할 만하다. 부인 조남숙 씨와 1남2녀를 뒀고 허태수 GS홈쇼핑 사장이 첫째 사위, 김재호 동아일보ㆍ채널A 사장이 둘째 사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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