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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자 문맹이 기자만의 탓인가?|

[취재파일] 한자 문맹이 기자만의 탓인가?

sbs권종오기자 2014.11.1

 

최근 국내 한 신문이 한자 문맹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제법 크게 보도했습니다.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한글 세대 기자들이 많아지면서, 한자어를 부정확하게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신문은 각종 사례를 제시하면서 우리 말을 정확히 써야 할 의무가 있는 신문, 방송, 통신사, 인터넷 뉴스 등 '언어'를 쓰는 분야에서조차 '한자 문맹'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한자어를 제대로 쓰지 못한 것은 물론 언론사와 기자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기자 개개인만의 탓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4년 전 회사 근처에 있는 한 분식집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5천 원 미만은 현금 결재해주기 바랍니다." 제가 그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현금 결재란 말은 틀렸으니 현금 결제로 표기를 바꿔주세요"라고 요청했습니다. 2주 뒤에 다시 방문했는데 여전히 '현금 결재'로 돼 있었습니다. 한자어를 모르는 것은 학력과 크게 상관이 없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국내 최고의 명문 대학을 졸업한 뒤 주요 언론사에서 10년 넘게 일한 어떤 중견 기자는 '체재비'를 '체제비'로 잘못 썼습니다. 더 고참인 모 기자는 재능이 뛰어난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 '재원'(才媛)이란 단어를 중년의 남자에게 사용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버젓이 생깁니다. '묘령(妙齡)의 할아버지'란 말을 쓰고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지 못하는 것도 다 한자어에 대한 무지 때문입니다. 국내 모 스포츠단체는 공식 공문에서 '주최 측'을 '주체 측'으로 잘못 쓰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모 기관에 기고한 적이 있는데 원고에서 '적확(的確)한 표현'이란 말을 썼습니다. 그런데 막상 인쇄된 내용을 보니 '정확한 표현'으로 돼 있었습니다. 제가 원고를 수정한 편집자에게 "왜 적확을 정확으로 바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적확이란 단어도 있습니까?"였습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한자어를 잘못 쓰는 사례는 너무 많아 다 열거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아주 선량한 사람들에게도 '장본인' '3인방'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희한'을 '희안'으로 '제재'를 '제제'로 '훼손'을 '회손'으로 '왜곡'을 '외곡'으로 '궤변'을 '괴변'으로 '부조금'을 '부주금'으로 동고동락'을 '동거동락'으로 '야반도주'를 '야밤도주'로 '양수겸장'을 '양수겹장'으로 '황당무계'를 '황당무게'로 잘못 사용합니다. 한민족이 쓰는 국어에는 순수 한글로 된 단어와 한자어가 복합돼 있습니다. 학자에 따라 다소 의견이 다르지만 대체로 한자어의 비중이 60%쯤 된다고 합니다. 매우 큰 비중입니다. 더군다나 불행히도 순수 한글 단어에는 추상명사나 전문용어가 적어 순수 한글로만은 학술 논문이나 깊이 있는 글을 작성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결론은 한자어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자어도 분명 우리나라 말입니다. 한자어를 정확히 쓰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국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반인과 미디어 종사자를 가릴 것 없이 한국 사회에 만연돼 있는 '한자 문맹' 현상은 우리 문화와 국어를 무시한 총체적인 결과이자 업보입니다. 가장 큰 책임은 지난 40년 넘게 한자 교육을 등한시한 국가의 정책에 있습니다. 진학과 취업을 위해 영어에 쏟는 정성의 10%만 한자어에 기울이도록 교육 당국이 유도했더라면 오늘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어 발음이 좀 틀리면 창피하게 생각하면서도 한자어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에 부끄럼을 느끼지 못하는 한 우리의 문화와 언어생활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부 당국은 언론 종사자마저 한자어에 취약한 '한자 문맹' 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하루빨리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한글-한자 혼용을 비롯해 혼동하기 쉬운 단어에 대한 한자 병기 등 이미 전문가들이 제시한 방안은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국어가 망가지고 있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권종오 기자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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