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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맹|

한자문맹(漢字文盲)

 

인천일보 송재소 칼럼(성균관대 명예교수) 2014. 01. 13

 

 

모 일간지의 새해 11일자에는 '한자문맹 벗어나자'란 제하의 기획물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국어 어휘의 70%, 학술 용어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한자어이기 때문에 한자를 배워야 한다는 극히 원론적인 이야기부터, 화학과(化學科)에 다니는 대학생이 학과 이름을 '火學科'로 쓰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화가 많이 소개돼 있다. 그 중의 압권은 D교수의 말이었다. "한 제자가 서류를 떼러 동사무소에 갔는데 직원이 '지장도 괜찮다'고 하니 '지장도 안 가져왔는데요'라 했다"고 한다. 지장(指章)이 손가락 도장임을 모른 탓에 생긴 참으로 생뚱맞은 일이다.

 

1970년 한글전용 정책이 전면적으로 시행되어 초··고 교과서에서 한자를 완전히 추방(?)한 이래 44년이 흘렀다. 이 기간 한글전용, 한자 병용, 한자 혼용 등에 대해 수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이 자리에서는 좀 더 실질적인 각도로 이 문제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어떤 아버지가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바닷가를 거닐며 나누는 대화를 가정해 보자. "아빠 저게 뭐예요?" "응 저건 방파제야" "방파제가 뭔데요?" "방파제는 파도를 막아주는 뚝이야". 이후 그 아들은 '방파제'라는 낱말을 익혔겠지만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면 '그 구조물을 왜 방파제라 했을까'라는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이런 호기심이 지적 능력 향상의 첫 걸음이다. 여기서 ''''''의 뜻을 가르쳐주면 그 호기심은 자연히 풀린다. 이뿐만 아니라 '방한복(防寒服)''방풍림(防風林)' 같은 낱말의 뜻을 습득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또 다른 장면을 가정해 보자. 어떤 어머니가 초등학생 딸과 함께 새로 복원된 숭례문을 둘러보며 "저게 숭례문이야"라 알려주면 딸은 속으로 '숭례문? 왜 하필 숭례문이야. 발음도 고약한데.'라고 중얼거릴 법하다. 이 대목에서 ''''의 뜻을 풀이해 '예를 숭상한다'는 뜻임을 가르치면 비로소 납득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옛 사람들은 인(((() 중에서 ''가 남쪽에 해당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서울 남쪽에 있는 남대문을 숭례문이라 이름 지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주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이다. 동대문의 이름이 '흥인지문'이라는 단순 사실을 아는 것과, ''이 동쪽에 배속되기 때문에 '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임을 아는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고력이 향상되고 이것은 학습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한글과 한자는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얽혀 있어서 분리할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여기서 한글전용론의 허와 실을 한 번 짚어보자. ··목의 병을 치료하는 병원을 이비인후과라 하는데,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냥 '이비인후과'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비인후과''耳鼻咽喉科'라는 한자어 없이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비인후과를 '··목 병원'식으로 바꾸지 않고 한자음만으로 '이비인후과'라 표기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한글전용 길일까? 수영경기 종목의 하나인 '蝶泳'을 그냥 '접영'으로만 표기한다고 해서 한글전용이 달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 '' '咽喉' '' 등의 한자를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물론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어느 정도 학습 부담을 지워야 한다. 그리고 한자 학습의 부담은 영어 학습 부담에 비하면 오히려 가볍다. 한글전용론자들이 왜 무분별한 영어 사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한자 사용에 대해서만 거칠게 비난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영어는 한글과 아무런 친연성(親緣性)이 없는 반면 한자는 한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 않은가? 이제는 '한자를 쓰지 않는 것이 애국하는 일'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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