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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만든 '한맹' 벗어나자 … 한자 받아쓰기 대회 열풍|


컴퓨터가 만든 '한맹' 벗어나자 … 한자 받아쓰기 대회 열풍


중앙일보 신경진기자 2014.03.01


중국 한자 위기론



지난해 7월 한어 국제 보급 기구인 공자학원 본부가 주최한 제12회 ‘한위차오(漢語橋)’ 세계 대학생 중국어 경연대회 참가팀이 한자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매진차이나]
한자의 발상지 중국에서 한자가 위기에 처했다. ‘펜을 들어도 글자가 떠오르지 않아 쓰지 못한다’라는 뜻의 ‘티비왕쯔(提筆忘字)’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만든 새로운 문맹 때문이다. 중국인 94.1%가 글자를 잊어버리는 실사증(失寫症)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항상 실사증에 시달린다는 응답자가 26.8%에 이른다고 중국 관영 런민왕(人民網)이 보도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늘 손으로 글씨를 쓰는 중국인은 47.9%에 불과하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한자 받아쓰기 대회까지 등장했다. 국영 중국중앙방송(CC-TV)은 지난해 8월 ‘중국 한자 받아쓰기 대회’를 제작, 방영했다. 초등학교 교실도 아닌 국영 방송국에서 자국어 받아쓰기를 하는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 반응은 뜨거웠다. 동시간대 시청률 평균의 4배를 기록했다. 대회는 홍콩·마카오 대표를 포함해 32개 성시 대표가 겨루는 형식을 택했다. 첫 방송에서 ‘주요한 대목’을 뜻하는 ‘뤄뤄다돤(락락대단)’을 정확히 써낸 항저우(杭州)외국어학교 학생 류이천(16)은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1800여 쪽의 『현대한어사전』을 모두 손으로 써 외웠다는 그는 ‘류대사(劉大師)’ ‘신의 아이(神孩子)’란 별명을 얻었다.









지난 8월 산둥(山東)성 랴오청(聊城)시 인민공원에서 학생들이 자판 대신 손글씨를 장려하는 행위예술을 펼치고 있다. [사진 이매진차이나]


 지역 방송도 나섰다. 허난(河南)위성방송은 지난해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 아이치이(愛奇藝)와 손잡고 ‘한자 영웅’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논어심득(論語心得)』으로 유명한 위단(于丹) 베이징사범대 교수가 평가위원으로 출연했다. 전국 시청률 톱10에 올라 현재 시즌2가 절찬리에 방영 중이다. ‘성어영웅(成語英雄)’이라는 유사 프로그램도 나왔다. ‘한자영웅’은 스마트폰 앱으로도 출시됐다. 이미 다운로드 343만 건, 하루 사용자 15만8000명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몰이 중이다.

 한자 프로그램의 인기는 한자위기론의 방증이다. 두꺼비를 뜻하는 라이하마를 묻자 성인 체험단 70%가 쓰지 못했다. 한약재 치황은 출전자 100명 중 3명만 정확하게 썼다. 참담한 실상에 시청자들은 한자 위기를 공감했다. 자식에게 영어와 피아노만 가르치다 근본을 망각했다는 부모들의 시청 소감이 쇄도했다.

 방송의 반향은 컸다. 대회가 경쟁 방식으로 진행되자 지방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각 성의 교육 담당 관리들은 고장의 자존심을 걸고 대표 육성에 나섰다. 허난성의 뤄허시는 학교마다 고대 한자 자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 읽기, 번체자(획수를 줄이지 않은 한자) 500자 읽고 쓰기 운동을 벌여 학부모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영국 출신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지난해 3월 베이징대학을 방문해 몸에 새긴 한자 문신을 보이며 미소짓고 있다. [사진 이매진차이나]


 한자 위기는 유명 인사도 예외가 아니다. 관영 신화사의 시사 주간지 ‘랴오왕(瞭望)’ 최근호에 우한(武漢)실험외국어학교의 활동이 보도됐다. 학생들이 사회 유력인사 100명의 웨이보(중국식 트위터)·방송·신문·잡지 글을 조사한 결과 3000여 건의 잘못 쓴 한자를 찾아냈다. 학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莫言), 유명 아나운서 양란(楊瀾) 등의 웨이보에서 찾아낸 틀린 한자들을 모아 전시했다.

 한자 위기의 원인은 컴퓨터다. 쿤밍(昆明)시 제3중학 교사인 저우리룽(周麗蓉)은 컴퓨터에 빼앗긴 한자를 되찾자고 주장한다. 그는 “교사는 반드시 판서를, 학생은 반드시 서예·성어 학습을 하도록 강제하는 법규를 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론자도 있다. 한자의 위기가 아닌 사용자의 위기라는 논리다. 근거는 한자의 역사다. 한자는 수천 년간 쓰고 적는 도구에 따라 갑골문(甲骨文)→금문(金文)→전서(篆書)→예서(隸書)→해서(楷書)로 진화해 왔다. 펑즈웨이(馮志偉) 교육부 언어문자응용연구소 주임은 “역사를 볼 때 한자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며 “한자의 전달 방식에 변화가 생길 뿐”이라고 말한다. 컴퓨터가 한자의 ‘터미네이터(종결자)’가 될 것이라는 위기론은 틀렸다는 주장이다.

 한자의 수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00여 년간 존망의 위기를 견뎌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중국의 지식인들은 청·일 ‘국민의 지적 수준(民智)’이 승패를 갈랐다고 판단했다. ‘한자 망국론’이 나왔다. 문맹 퇴치 방법을 모색했다. 한자 혁명이 시작됐다. 한자 대신 한어(漢語·중국어)에 주목했다. 발음을 표기하는 각종 주음(注音) 방안이 나왔다. 1918년 현재 대만에서 사용 중인 주음 자모가 탄생했다. 이어 한자를 폐기하고 영어 알파벳으로 대체하자는 라틴화 주장이 제기됐다. 1919년 5·4 신문화 운동은 한자 개혁론에 불을 붙였다. 1925년 ‘국어 로마자 병음법’이 제정됐다. 공산당은 1954년 문자개혁위원회를 꾸렸다. 로마자로 중국어 발음을 표기하는 ‘한어병음방안’을 만들었다.

 한자 획수를 줄이는 단순화도 라틴화와 동시에 진행됐다. 1922년 문자학자 첸쉬안퉁(錢玄同)의 ‘현행 한자 필획 감소안’을 시작으로 1934년 2400여 간체자(한자의 획수를 줄인 자) 초안이 나왔다. 1956년 1월 국무원은 515개의 간체자와 54개 간체 편방(偏旁·한자 좌우측의 부수)을 포함한 ‘한자 간소화 방안’을 공포했다. 그중 515자는 평균 16.08획의 한자를 8.16획으로 줄였다. 획수를 절반으로 줄인 파격안이었다. 수정 의견을 종합해 1964년 ‘간화자총표’ 2238자가 발표됐다.

 한자 무용론 위기를 로마자 발음 기호와 간체자로 극복했으나 정보화라는 도전이 밀려왔다. 한자는 타자에 취약하다. 서양이 타자기를 발명하자 중국 역시 1000여 개 자판이 딸린 한자타자기를 발명했다. 그럼에도 표기 불능 한자가 많았다. 한자가 컴퓨터 보급의 최대 장애물이 됐다.

 해결책이 제시됐다. 1983년 컴퓨터 기술자 왕융민(王永民)이 오필자형(五筆字型)이란 한자 입력법을 발명했다. 처음으로 분당 100자 타자에 성공했다. 그러나 자판 구조가 복잡해 보급이 더뎠다. 대신 병음을 활용한 쉬운 입력법이 속속 등장했다. 병음 타자법은 한자 망각증을 초래했다.

 중국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 정부는 2012년 12월 ‘국가 중장기 언어문자 사업 개혁·발전 계획(2012~2020)’을 내놨다. 국민의 언어·문자·응용 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8개년 계획이다. 쓰기 교육 강화가 핵심이다.

 중국 정부는 한어를 영어에 버금가는 제2의 국제 공용어로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한자는 외국인에게 넘기 힘든 벽이다. 김현철 연세대 교수(중문과)는 “한자가 한어 국제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며 “중국은 한어와 한자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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